▲ 조준상 목사
한민족이 이동에 관련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이동설, 일본으로부터의 이동설, 인도아대륙으로부터의 이동설 등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가진 사실성과 허구성을 살펴본다.

1.몽고로부터 이동설

한국인들은 대체로 북아시아 지역의 종족과 문화에 원초적으로 깊이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교 교육으로부터 한국인은 몽골로이드 계통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북아시아 여러 종족 중에서도 몽골은 한국인들의 조상, 또는 형제라고 하는 동족의식이 팽배해 있다.
그래서 몽골 사람에게는 과거 중세시기에 약 100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그 침략과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강한 호감을 나타낸다. 이 시기 한·몽 관계를 ‘사돈’이란 낱말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한국 사람에게서 흔히 보이는 동향(同鄕)사람에 대한 유별난 우대나 우의가 국외로는 몽골 사람에게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의 선사 및 초기 고대 문화는 중국 문화와 깊은 관계 속에서 역사를 전개시켰던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북아시아로 부터의 주민이동 및 교류에 의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북아시아는 한국 문화의 뿌리라는 관념도 보편화되어 있다. 단군의 최초 부족국가를 건설함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2.중국으로부터 이동설

우리나라를 살펴보아도 고조선 단군왕검이 도읍을 정한 뒤 중국으로 기자의 침입을 받아 기자 조선이 있었다.
바로 이때에 많은 성씨가 우리나라 한국에 들어왔다. 현재 우리나라 성씨는 270여 개 정도 인데, 이 중 130여 성씨가 중국에서 온 귀화 성씨라 한다. 인구대비로 4천여만의 남한 인구 중 1천만을 상회하고 있어 현재 서울 인구의 규모가 중국에서 귀화한 한족의 후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귀화 성씨 중에는 덕수 장(張)씨, 한양 조씨 등 1백만에 가까운 성씨가 있고, 독고(獨孤)씨, 섭(葉)씨, 마(摩)씨 등 1,000명 미만과 500명도 안 되는 풍(馮)씨, 초(楚)씨도 있다.
대부분의 귀화 성씨가 1천 년 이상 혹은 수백 년이 넘어 중국 성씨라는 개념조차 없어졌지만 이들 대부분의 성씨들은 한족(韓族)이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3. 인도아(印度亞)대륙설 (現 스리랑카로부터 이동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석탈해 신화를 보면 용성국(龍城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용성국은 인도아대륙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 승려 각훈이 지은 <해동고승전>에도 두 지역 간의 교류에 관한 많은 양의 자료가 있다.

4. 일본으로부터 재이동설

우리 조상 중에는 일본인계도 있다.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충선이 그 주인공이다. <우록김씨 세보> 및 <모하당전집>에 의하면 그는 일본인으로 본래 시야가이다. 또 김충선(1571-1642)을 시조로 모시는 김해 김씨(김수로왕 김해김씨와는 다름)인데, 그는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의 우선봉장이 되어 3천의 군사를 데리고 침공해 왔으나 조선의 문물과 인정, 풍속을 흠모한 나머지 경상도 병마절도사인 박진에게 귀순한 후 귀화 했다. 그는 1579년 정유재란 때와 1627년 정묘호란 때 도원수 권율과 어사 한준겸의 탄원으로 인조부터 성명을 하사 받고 자헌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사)한민족세계선교훈련원 이사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