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을  들고서

                                                      이향아

식판을 들고 차례를 기다릴 때

특히 그것이 돈을 받지 않는 공짜 밥일 때

소비에트 수용소의 이반 제니소비치를 생각한다

그가 몰래 감추러 둔 마른 빵 200g

천하에 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생각한다

 

거기 대면 황제도 부럽지 않건만

왜 이렇게 나는 부끄러운가

겨우 밥을 먹기 위해서 서 있는 육신

밥이나 먹으려고 목을 빼는 정신

왜 이렇게 공복감은 때를 알고 찾아와

한 뼘 얼굴을 흔들고 구기는지

 

빈 그릇을 들고 서서 채움을 기다릴 때

우리는 수용소의 무기수일 뿐

출옥할 날짜를 안들 무슨 소용 있으랴

다만 온순하게 복역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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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영 목사(장로, 시인, 문화평론가)
화자가 있는 곳은 어느 식당 배식 장소로, 스탈린 시대의 감옥 이야기를 쓴 솔제니친 소설을 동원하여 비유적으로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곳이다.

소설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는 주인공이 수용소 안에서 하루 동안 겪는 이야기다. 평범한 농민인 슈호프의 강제노동의 과혹한 이야기를 통해 참혹한 실존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제제의 의미를 초월하여 현대사회의 보편적 상황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여 고발하고 있다.

시인도 제니소비치의 이야기로 인간존재론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말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먹는다는 일은 인간을 지탱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누구나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이다. 먹는 일은 육체의 일인 동시에 정신을 지탱해주는 요소가 된다.

수용소란 인간 존재의 강박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성경이 말하는 죄인이다. 삶이란 수용소처럼 처절한 실존의 장소이다. 그래서 성경이 지시하는 법대로 온순하게 복역하여야 할 무기수와 같은 존재다. 죽음을 의미하는 만기출옥을 기다려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다. 다른 말로 하면, 갇혀 있음으로 자유로운 존재다.

인간이란 육신의 이미지가 주는 요소와, 정신의 이미지가 주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갈등이란 이 둘 사이에서 생기는 것으로, 현실과 이상의 조화는 이 둘 사이의 조화된 상태를 말한다.

‘겨우 밥을 먹기 위해서 서 있는 육신/ 밥이나 먹으려고 목을 빼는 정신’의 구절처럼 이질적이고 상반적인 요소를 동원하고 있다. 이것은 융합시에서 중요시하는 양극화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창조적 작업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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