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미국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막내딸이 해산을 했다. 초산이라서 힘이 들것이라는 우려를 말끔히 씻고 순산하여 외손자를 품에 안았다.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지나 세상에 나온 때문인지 크게 나왔다. 옛날 어른들은 작게 낳아서 크게 기르라 했는데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앓이를 하고 있다. 만삭이 된 귀한 딸이 해산을 앞두고 배앓이를 하듯이 지독한 산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앞당길 수는 없다. 산모가 너무 고통스러워하거나, 아니면 일진을 따져보고 길일을 택하여 촉진제를 주사해서 출산일을 앞당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예정일을 며칠 뒤로 미루어서 좀 더 큰 다음에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야권 단일화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금쪽같은 시간을 축내는 바람에 정책이 실종된 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12월 19일! 꼭 그 날에 싫든 좋든 상관없이 대통령 앓이는 끝을 내야만 한다.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단일화인지, 아니면 차기를 담보한 양보인지, 그도 아니라면 정치 초년생 교수께서 겁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비정한 조직 앞에서 두껍고 높은 벽에 부딪쳐 도중하차를 하신 건지, 그 판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유권자로서는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두고 안철수 현상을 즐겼다면 이제는 안철수 책임론을 말해야 한다. 검증의 기회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사방을 누비면서 유권자들의 가슴을 한껏 부풀려 놓고는 안개처럼 그렇게 사라짐으로 대한민국의 장래를 고민하게 한 그 책임 말이다.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면 더 이상 유권자들의 표심을 흐리게 말고 룰에 의한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도록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책임론은 고사하고 아직도 안철수 전 후보예정자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치에 너무 목마른 유권자들의 갈망인가?

한국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5년 전 이맘때의 교회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철저하게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쪽이 있는가하면 적극적인 사회참여 내지는 정치참여를 강력 권장하는 쪽도 있다. 신학적 성향이나 입장에 따라서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공통점은 있다.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난다.”는 성경을 함께 읽고 있다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이번 후보자들 중에는 장로가 없다. 그래서 종교편향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서 마음은 편하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렇게 조용을 지나 잠잠해도 되는 것일까? 한국교회는 과연 누구에게 표를 주어야 하는가? 꼼꼼하게 정책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분명한 한 가지는 임기 5년이 아니라 이 나라의 멀고 긴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불십년’이라하지 않았는가? 정권교체는 필연이라는 말로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 된 그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29:7)고 쓴 편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여호와의 집을 선거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도 그렇다. 골통 보수라 해서 침묵하는 것 역시 죄악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고, 선거라는 제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방법가운데 하나라고 믿는 다면 교회는 적어도 모든 교인들을 투표소로 나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성한 한 표를 꼭 그 사람에게 몰아주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 사람 말이다. 
예장 개혁측 전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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