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는 날이다. 그러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 간데 없이 흥청망청 놀고 마시는 날로 치부되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조차 세상의 풍조에 편승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성탄절의 경건함을 회복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면서 그리스도의 탄생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성탄시즌이 되면 거리는 온통 온갖 상술과 유흥의 물결로 뒤덮인다. 성탄절을 앞둔 거리는 셀 수 없는 인파로 북적인다.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트리장식이 등장하고, 술집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앳된 아르바이트생들이 술과 안주를 연신 테이블로 실어 나른다. 사람들은 성탄절의 본질을 찾기보다는 술과 유흥을 즐기며 그저 먹고 노는데 몰두해 있다.

길게 늘어선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상점 앞에는 산타 인형이 유혹하듯 춤을 추고 있다. 상점 안에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상품들로 가득 차고, 호화찬란한 장식과 귀청 떨어지는 캐롤로 사람들의 정신을 홀린 후,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장사꾼들의 상술이 점령해 버린 12월 거리의 풍경이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대표적인 유흥가 주변에 위치한 이 교회는 12월이 오기 전부터 성탄 준비로 분주하다. 교회 입구에 커다란 성탄 트리를 장식하는가 하면, 교회 건물 전체를 휘황찬란한 전구의 불빛들이 휘감는다. 성도들은 들뜬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하고 온갖 장식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

하지만 정작 이 교회와 성도들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인색하다. 성탄절이 돼도 그저 성탄예배를 드리고, 연말이 다가오면 주변의 고아원 등에 쌀 한두 포대를 일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전부다.

성탄절날 교회 안은 찬양과 예배, 기도 소리로 가득차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교회 밖 골목에선 술 취한 취객들의 고함 소리와 그저 먹고 놀고 마시는 데 몰두한 수많은 사람들의 흐느적거림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1년에 한번뿐인 성탄절마저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예수 탄생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세상과 높은 담을 쌓은 교회 안에서 그들만의 잔치, 교회만의 잔치를 즐기는 성도들과 교회들만이 늘어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히 이 대형교회만의 모습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계 곳곳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지지만 ‘생색내기’에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 행사, 사랑의 쌀나누기, 양로원과 고아원 방문, 성탄트리 점등, 불우 이웃 돕기 등을 통해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고는 있지만, 해당 교회나 단체에만 그 혜택이 매몰되고 있다.

특히 이름 있는 교회나 목회자들 위주로 여러 번 중복되어 있는 행사는 세력 과시로 보여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뿐, 이 땅에 사랑과 평등을 실현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서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높은 성탄트리와 형형색색의 장식은 자칫 백화점, 쇼핑거리 등지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성탄장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세상에 의해 흐려진 성탄문화를 정화시키고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올바른 길로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외되고 있는 작은교회나 농어촌지역의 교회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 크리스마스 세태를 걱정한 많은 목회자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와 뜻을 모른 채 분위기에 젖어 흥청망청 보내거나 단순한 연례행사쯤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독교의 절기인 크리스마스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로 인해 변질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한 신학자는 이런 세태를 비판하며 “비록 그리스도께서 수천 번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지라도 그대 마음에 계시지 않으면 그대의 영혼은 비참해지리라”고 내뱉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경건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을 말한다. 이들은 앞으로 교회문화를 향유하고 이끌어갈 미래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2천여년 전처럼 여전히 갈등과 반목이 넘치는 시대를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랑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메마른 형식으로 굳어져 버리고, 우리의 이기적 욕망을 부추기고 내보이는 날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2천여년 전 ‘아기 예수가 오신 날’은 진정으로 우리가 겸허해져서 많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거나 덜 가진 자들과 나누는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증오가 아닌 사랑을, 승리와 지배가 아닌 희생과 섬김을 몸소 실천하고, 권세 있는 자들과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내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높이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 먹인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이 땅의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이 길을 순종하며 따라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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