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당도하신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이것, 저것 자랑을 하신다. 장마당에서는 웬게 이렇게 비싸냐며 팽팽하시던 어머닌데 집에 와서는 모두 싸게 싸게 사셨다며 대단한 횡재라도 하신 양 입에서 침이 튄다. 아버지의 새 바지는 벽 앞에 선 옷걸이에 걸렸다. 저녁은 늦었고 장보기에 수월찮게 힘을 쏟은 탓에 어머니는 일찍 자리에 누우신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맏며느리가 시아버님의 새 바지를 손에 들고 작업실이자 침소인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마름질을 할 작정이다. 곤한 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다. 헌 바지에 기장을 맞춰 가위질을 하고 날렵하게 손을 놀려 시아버지 몸에 꼭 맞는 바지를 만들어 제자리에 걸어놓고는 사랑방 자기만의 공간으로 곤한 몸을 감춘다. 늘어지게 한 잠을 주무시고는 한 밤중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남편의 바지를 내려 손에 들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 단정히 앉으신다. 모처럼 큰 돈(?)을 주고 산 새 바지를 내일 아침에 입혀드릴 생각이다. 초저녁에 며느리가 손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어머니는 다시 가위질을 하신다.
다음 날 아침상을 무른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는 안 봐도 비디오다. 얼마나 큰일인가? 모처럼 산 바지가 아닌가? 대 소동이 일어나야 마땅하지 않은가! 바지를 걸친 아버지는 한 참을 껄껄거리며 웃으신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데 말이다. 새 바짓가랑이가 짧아도 너무 짧은데다 그나마 짝짝이가 아닌가? 그야말로 새로운 패션이다. 이 모습을 바라본 맏며느리가 좌불 안석이다. 어찌 이런 일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낯빛이 말이 아니다. 누구 잘못인가? 따져 묻지도 못한다.
다른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때 며느리가 입을 열었다.“아버님! 제 잘못이 예요. 엊저녁에 제가 손을 봤거든요. 어머님이 너무 곤하게 주무셔서...! 제가 너무 많이 잘랐어요. 어머니의 입이 벌어진다. 네가 잘랐다고! 아냐! 내가 했어, 내 눈이 어두워서 그랬나봐! 아니 예요. 제가 했어요.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은 서로 자기 잘 못이라 우기는 진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 왈“내가 반바지를 입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렇게 알아주다니! 여보! 당신이 좀만 더 자르면 아주 멋진 반바지가 되겠소! 아주 잘된 일이 아니요! 허허! 온 집안 식구들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른다. 용서와 배려가 별건가? 사소한 일에 아량을 보이면 온 집안이 웃을 수 있다. 얼마든지 시비 거리가 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집안의 이 모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반전되지 않았는가? 곤한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의 그 마음과 상관없이“누가 널보고 손대라 하더냐? 충분히 지천감이다. 그것도 시어머니가 아닌가? 서로 간에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날 집안은 충분히 시끄러울 수 있었고, 그 뒤로 몇 날, 며칠을 두고 집안 분위기는 어땠을까?
이해라는 말로 번역된 영어단어는 Under Stand 이다. 말 그대로“아래에 선다.”는 의미이다. 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일 게다.’요즈음 소통이니 불통이니 말도 많고 탓도 참 많다.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한번쯤 해 봄직한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 밑에, 그 사람 아래 한번쯤 서보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을 텐데!!!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