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5일 장이 열리는 날이다. 주섬주섬 돈이 될 성 싶은 것들을 올막졸막 챙기어 머리에 이고 장마당을 찾는다. 이 사람 저사람 만나 거래를 튼다. 물물교환 수준이지만 어머니의 계산은 그런대로 맞아 떨어졌다. 꼬깃꼬깃 주머니에 찔러 모은 지폐를 쪽 고르게 정리하고 엄지에 침을 무쳐서 세고 또 세신다. 길거리에 걸대를 세우고 남정네들 바지만, 바지만 모아 볼품 있게 걸어놓고 오가는 장손님들을 기다리는 노점 총각에게로 다가가신다. 어머니는 헤어져서 무릎이 들러날 것 같은 아버지의 바지가 맘에 걸렸던 것이다. 살 바지는 단 한 벌인데 몽땅 사기라도 할 것처럼 돌아가며 다 만져보고 찬찬히 드려다 보신다. 그럴 듯한 바지 한 벌을 골라 손에 들고 나오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시다. 집에서 출발할 때나 거반 같은 수준의 보따리 하나가 다시 생겼다. 

집에 당도하신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이것, 저것 자랑을 하신다. 장마당에서는 웬게 이렇게 비싸냐며 팽팽하시던 어머닌데 집에 와서는 모두 싸게 싸게 사셨다며 대단한 횡재라도 하신 양 입에서 침이 튄다. 아버지의 새 바지는 벽 앞에 선 옷걸이에 걸렸다. 저녁은 늦었고 장보기에 수월찮게 힘을 쏟은 탓에 어머니는 일찍 자리에 누우신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맏며느리가 시아버님의 새 바지를 손에 들고 작업실이자 침소인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마름질을 할 작정이다. 곤한 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다. 헌 바지에 기장을 맞춰 가위질을 하고 날렵하게 손을 놀려 시아버지 몸에 꼭 맞는 바지를 만들어 제자리에 걸어놓고는 사랑방 자기만의 공간으로 곤한 몸을 감춘다. 늘어지게 한 잠을 주무시고는 한 밤중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남편의 바지를 내려 손에 들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 단정히 앉으신다. 모처럼 큰 돈(?)을 주고 산 새 바지를 내일 아침에 입혀드릴 생각이다. 초저녁에 며느리가 손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어머니는 다시 가위질을 하신다.

다음 날 아침상을 무른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는 안 봐도 비디오다. 얼마나 큰일인가? 모처럼 산 바지가 아닌가? 대 소동이 일어나야 마땅하지 않은가! 바지를 걸친 아버지는 한 참을 껄껄거리며 웃으신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데 말이다. 새 바짓가랑이가 짧아도 너무 짧은데다 그나마 짝짝이가 아닌가? 그야말로 새로운 패션이다. 이 모습을 바라본 맏며느리가 좌불 안석이다. 어찌 이런 일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낯빛이 말이 아니다. 누구 잘못인가? 따져 묻지도 못한다.

다른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때 며느리가 입을 열었다.“아버님! 제 잘못이 예요. 엊저녁에 제가 손을 봤거든요. 어머님이 너무 곤하게 주무셔서...! 제가 너무 많이 잘랐어요. 어머니의 입이 벌어진다. 네가 잘랐다고! 아냐! 내가 했어, 내 눈이 어두워서 그랬나봐! 아니 예요. 제가 했어요.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은 서로 자기 잘 못이라 우기는 진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 왈“내가 반바지를 입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렇게 알아주다니! 여보! 당신이 좀만 더 자르면 아주 멋진 반바지가 되겠소! 아주 잘된 일이 아니요! 허허! 온 집안 식구들이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른다. 용서와 배려가 별건가? 사소한 일에 아량을 보이면 온 집안이 웃을 수 있다. 얼마든지 시비 거리가  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집안의 이 모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반전되지 않았는가? 곤한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며느리의 그 마음과 상관없이“누가 널보고 손대라 하더냐? 충분히 지천감이다. 그것도 시어머니가 아닌가?  서로 간에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날 집안은 충분히 시끄러울 수 있었고, 그 뒤로 몇 날, 며칠을 두고 집안 분위기는 어땠을까? 

이해라는 말로 번역된 영어단어는 Under Stand 이다. 말 그대로“아래에 선다.”는 의미이다. 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는 것일 게다.’요즈음 소통이니 불통이니 말도 많고 탓도 참 많다.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한번쯤 해 봄직한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 밑에, 그 사람 아래 한번쯤 서보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을 텐데!!!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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