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청교도는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주일날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내며, 선하고 독실한 생활을 하였으며, 또한 독립적이고, 독창적이고, 자부심이 강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바로 그러한 점이 신대륙의 가혹한 환경에서 성공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 - 1683)는 청교도 목사였지만, 일부 동료 목사들처럼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그는 “강제적인 숭배는 하나님의 코에 악취를 풍길 것” 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청교도들이 1631년 보스턴에 메사추세츠베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걸 도왔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격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청교도 동료들이 종교적 자유를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청교도가 아닌 사람들을 때리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추방했고 심지어는 교수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윌리엄스’는 모두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종교적 관용이 없음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의 분노를 샀다. ‘윌리엄스’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던 청교도들은 그를 배에 태워 영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를 사전에 안 ‘윌리엄스’는 로드아일랜드로 달아나 프로비던스라는 도시를 세웠다. ‘윌리엄스’는 프로비던스에서는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도록 하용 하였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다. 다른 식민지들도 점차 종교적 관용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세운 식민지는 로드아일랜드 주(The State of Rhode Island and Providence Plantations)가 유일 하다.(출처 :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미국사 이야기)

‘윌리엄스’의 신학사상은 미국에 자유민주주의 역사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자신의 신앙적 신념 때문에 영국으로 강제로 송출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칼빈주의는 "선택"교리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당시의 청교도들은 왜 자신들의 신앙의 절대성 속에 모든 사람들을 가두어 두려 했을까? 모두를 향한 구원의 열정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전 미국인이 선택받은 것으로 여겼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들은 그토록 강경정책 만을 고수했을까? 자신들은 신앙의 자유에 관하여 생명까지도 내놓았으면서도, 왜 타인에 대하여서는 한 치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신학적, 신앙적, 심지어는 자기생각에만 절대적 무게를 둠으로 성경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배운 “칼빈신학”으로 ‘칼빈’에게 도전 하는 것, 다시 말해 잘 된 것은 계속 발전시키고 잘 못된 부분은 지속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것이 “칼빈주의” 곧 “개신교”의 정체성이 아닐까?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에 반하거나, 이의를 달면 언어적 살인 등이 자행되고 있음에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각종 욕설, 입에 담기 어려운 포악한 말, 그것도 무차별 적으로 SNS를 타고 있으니, 제도권 밖에 있는 자들의 위장술이 활개 치도록 여건을 조성시켜 주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 참으로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하면 안 되나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2-11)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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