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 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이런 동요를 부르고 들어 본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설날이 눈앞이다. 어릴 적 이만 때가 되면 설빔을 기대하며 손가락을 꼽았다. 어머니는 달포를 두고 5일 장이 열리는 날마다 장마당에 나가셔서 조금씩, 정말 조금씩 장을 보아서는 벽장에 차곡차곡 쌓아 가셨다. 설날이 가까울수록 벽장은 풍성해졌다. 그 속에 내가 입을 설빔도 있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시면 한바탕 패션쇼가 벌어지곤 했다. 두 동생이랑 설빔 입기 예행연습(?)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아련한 추억이다.

그립다. 무지 그립다. 어머니도 보고 싶다.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흘러간 옛 놀이가 아닌가? 기억의 박물관에서나 가만히 꺼내보고는 소중하게 다시 접어 넣는 소중한 기념품이다. 기다리던 설날 아침이 밝았다. 부산하기 그지없는 아침이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의관을 정제하신다. 망건에 갓을 받쳐 쓰신다. 차례를 위해서 정장(?)을 하신 것이다. 우리 형제도 덩달아서 서둘러 새 옷을 입는다. 이미 몇 번씩이나 입어 본 옷이니 거칠게 없다. 그리고는 밤을 치시는 아버지 곁에 다소곳이 앉는다. 차례 상에 올릴 밤을 맵시 있게 깎는 작업을 ‘밤을 친다.’고 하셨다. 작은 손칼을 잘 갈아서 날을 세우고, 날렵하게 쳐나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아버지의 손을 거친 밤톨은 하얀 속살을 드러냈고 그 모양은 거의 하나같이 일정하여 마치 기계로 깎아 낸 것 같았다. 

뵙고 싶다. 정말 그립다. 천상에 계실 아버지가! 상투를 오뚝 말아 올리시고, 망건에 갓을 쓰신 아버님의 모습은 참으로 근엄하셨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시던 그 당시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시는 그 일은 어린 아들들에게 당신을 위풍당당한 아버지로 각인시키는 가장 좋은 기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례가 끝이 나면 어김없이 세배가 시작된다. 형식으로 건성하고 지나는 법이 없었다. 부모님께서 아래 묵에 좌정하신다. 그리고 누님들부터 다소곳이 세배를 한다. 그 다음은 우리 형제 차례다.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세배를 받으신 아버지는 수염을 쓸어내리시며 헛기침을 하신“후에 몇 살이냐?”물으시고는“뉘 집 딸(아들)인고?”물으셨다. 이웃집에 세배 가서 어른이 물으면 대답할 말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덕담 한 마디를 하셨다. 기억하기로는 “부모 말 잘 들어야 한다. 형제간에 우애해야 한다. 건강해라. 콩알 하나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 공부 잘해라!”대충 이런 말씀을 빼 놓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담 끝에는 언제나 세배 돈을 주셨고, 아우에게 두 살 위인 형에게 세배를 시키시면서 “형은 부모를 대신하는 법”이니 마땅히 세배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나중에야 그 깊은 뜻을 알았다. 그렇게 배운 동생은 나랑 같이 늙어가는 처지였으나 세상을 떠나던 그 해 설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형님! 세배 받으세요! 라며 절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효를 가르치셨고, 형제간의 도리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기에 우리 형제는 반듯하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효가 사라졌다. 효가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도 사회에 문제가 많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자녀들은 부모님께 꼭 세배를 하고, 부모님들은 꼭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으시라고 권한다.

물론 효라는 것이 단순히 절 한번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지라도 기본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기본이라는 것은 부모, 노인, 스승님께 절로서 예를 갖출 줄 아는 것이다. 그런 정신과 자세를 갖춘 사람은 절대로 어른들에게 막말은 하지 않는다. 효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바로 세워져 갈 것이다. 가장 멋진 인간관계는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소가 하모니를 이루고, 남녀가 하모니를 이루고, 계층 간에 하모니를 이룬 세상이 가장 건강한 세상이고 행복세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 하모니는 서로 간에 존경심이 있을 때 가능하며, 그 존경심은 절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부모는 물론 사람에게 세배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는 절하지 말라하신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하여 세배까지 정죄하는 우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나 크게 오해한 것이다. 살아계신 부모님은 우상이 아니다. 자녀들로부터 절을 받을 만한 부모님이시다.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여 감사함으로 절하는 것일 뿐이다. 금년 설에는 꼭 세배를 하자!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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