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선교130여년이 지난 한국 기독교회가 사회나 국민들 사이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신임을 받고 있는가? 영향력이란? 사회악에 대한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와 선으로의 대항의식이 얼마나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며, 한국기독교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비교 하여 보았을 때에 죄악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대처 방법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하고 따르려 하는지에 대한 여론이다.

선교 초기에는 순전한 조선 백성들이 기독교의 선과 의, 성스러움을 전수받아 순전한 성품에 의와 선과 성스러움의 옷을 입게 되자 모든 사람에게 기독교의 성스러움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기독교 교리는 잘 몰라도 기독교의 신앙을 배운 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의롭고 정직한 삶을 보임을 통해 비판의식을 가졌던 자들도 기독교에 대해 호의 감을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에 귀의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이 사회 나와서 거짓 없는 신앙 그대로 실천을 통해 드러난 신앙의 실제 모습을 보고 기독교 전체를 판단하며 따랐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급속히 부흥하게 된 배경은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초기 성도들의 땀 흘림과 희생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 신앙선배들이 일군 밭에 자란 식물을 무전취식하는 꼴이다. 계속해서 부흥이라는 뼈다귀를 우려 먹다보니 이제는 국물이 말갛게 되어 영양결핍 상태가 되었다. 결국 교회가 사회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니 이러다할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다. 오히려 교회가 너무 사치스럽게 변모되어 가지지 못한 일반 서민들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신비한 종교단체로 비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가 교회를 보는 눈은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다. 왜냐하면 교회가 오히려 사회 보다 구제에 미숙하고 이웃 사랑에 덜 숙련된 모습을 보이자 사회는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실정이다. 교회라는 단체는 이제 사회 속의 일반 기업처럼 여긴다. 교역자는 종교기업의 사장이요 장로는 임원들, 집사나 권사들은 팀장 정도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행사는 무당이나 영매 자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 대동소이하게 여긴다. 왜 교회의 예배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는가? 이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낮추어 보려고 하는 원인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의 질을 스스로 떨어뜨린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 속에서 조직되는 지도자들의 모임인 연합단체들의 행태는 국회의원들이 모여 당리당략에 의해 여야가 싸움질하고 뻑하면 제소하는 모양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다. 소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목회자들이 모여 서로 단체를 구성하여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오늘까지 한 솥에 밥을 먹다가도 차버리고 다른 단체를 구성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목회자들 끼리 서로 원수를 맺으면서 교회강단에선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미워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인다. 이는 표리부동한 행동이니 자연 사회 나타나는 현상은 교회 불신이다.

교역자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행동하였기에 제일 출세를 빠르게 할 수 있는 직종에 목사의 직업이 상위에 링크된 적도 있었다. 목사를  성직자라고 표현 하였는데 오늘 날 과연 목회자가 성직자라는 직종의 이름을 부를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목회자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하면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리는 일은 사회 정치꾼들의 행태는 저리가라다. 단체장을 뽑는데 마치 의원 선거 비용에 맞먹는 선거비용이 들어가고, 유권자인 목회자들도 은근히 투표를 돈과 바꾸려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기막힌 노릇이다. 

성장을 위한 부흥회를 개최하는 목적이 영혼 구원인데도 불구하고 참여한 성도들이 낸 헌금의 많고 적음이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삼는 일은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한 원인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사회인의 눈은 교회에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며 교회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돈을 많이 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러한 세속적인 행태로 인해 교회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는 않다. 신성해야 할 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신으로 믿는 돈의 많고 적음에 교세의 척도로 삼으니, 이제는 세상에 있으나 세속의 때를 묻히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모습을 찾기 힘들다. 세상에 찌들어 삶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우울한 사람들이 가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곳이 없어져 가는 현상인데, 아직도 교회는 건물이 크고 웅장하면 교인들이 몰려올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교회의 신성을 회복하는 길은 물질 숭배에서 벗어나는 길인데 한국교회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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