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함박눈이 쏟아지는 월요일, 눈을 맞으며 용산 시네마를 찾아갔다. 평소에 영화관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터에“용산 시네마에서 특별한 시사회가 있다.”는 지나가는 듯 들려주는 한 마디만 의지하고 집을 나선 게 탈이었다. 10시부터라 했는데 눈길이 멀어서 허둥대며 갔는데도 늦었다.

오늘의 특별시사회는 한교연이 주최하고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정훈 목사)가 탈북자들과 교계 지도자 200여명을 초청하여 가지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등이 꺼지자 화면 가득히 음산한 고문현장이 펼쳐지고, 고막을 찢을 듯한 신음이 장내를 압도한다. 예수 믿는 부부를 반민족, 반사상적인 1급 정치범이라 하여 붙잡아다가 살인적인 고문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고난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무지막지한 고문이었다. 아내 영미는 그 고통 속에서도 시편을 암송하며 처절하게 죽어간다. 2년 후 남편 주철호가 마을로 돌아오면서 작은 산골 마을에 예기치 않은 소용돌이가 인다. 폐탄광의 동굴에서 비밀리에 예배하며 신앙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남조선으로 탈북 시키려는 계획을 진행해 나가는 철호를 사이에 두고 겪는 처절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삽화처럼 그려낸 장면들을 통해서 캄캄한 북한의 현실과 탈북자의 남은 가족들은 북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두만강 국경수비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돈 거래현장은 탐욕스러운 고위군인들의 실상을 보여주었고, 김정일 사망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를 잘도 그렸으며,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장교의 광기도 리얼하게 그려내었다. 그 마을 사람들의 실질적인 신앙지도자로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박성택이 극심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변절하고, 체제의 강압에 공포를 느끼며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배우 안병경의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영화는 막바지를 향하여 숨 가쁘게 진행된다. 주철호가 아내 영미를 사지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성태라는 의외의 사실을 알고 그 이중성에 치를 떤다. 잔인한 복수를 결심하고 평양 칠골 교회당에 잠입하여 거짓 간증을 하고 화장실에 들른 박씨를 만나 응징의 칼을 들었으나 성태로부터 그의 아내에게 가해진 기막힌 고문 때문에 눈이 뒤집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절규를 듣고는 골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이미 마을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고 철호 역시 검거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손자 용규를 거두면서 마을 사람들의 도강을 도우려는 철호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살펴 주던 할머니 역시 남편과 함께 순교한 뒤였다.

홀로 남은 용규는 철호가 묻어두었던 예수님의 초상화를 찾아 가면을 만들어 쓰고 지붕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철호와 눈이 마주치자 온 몸에 불을 지르고 떨어져 죽는다. 그 현장에서 체포된 철호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아내가 불러주는 찬송소리를 들으며 해처럼 밝은 미소를 남기고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금도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남한은 가나안 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으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 무대에 잠간 오른 김진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예수님을 몰랐는데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서“이 영화는 공포체제에서 목숨을 걸고 몰래 신앙을 지켜나가는‘지하교회’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압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처절하며 절망스러운 것인지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오는 2월 13일에 전국 개봉관에서 일제히 막이 오른다고 한다. 전국 교회는 물론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아직도 미몽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까지 꼭 한번 보고 정신을 차렸으면 정말 좋겠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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