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작금 한국교회는 지속적 성장이라는 빌미로 교회가 세상의 정치와 조직을 도입해 영원히 기득권을 누리기 위한 갖가지 세속적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 것 같다. 기득권 세력들은 세상정치 체제와 운영방법을 그대로 도입해 어렵게 장악한 거대한 교권을 장기집권 하려는 잔꾀를 부리고 있다. 자칫 세상 정치체제를 잘못 흉내 내다 보면 비판과 시끄러움을 우려해 성경에서 그 비슷한 방법을 찾아, 거머쥔 교권을 오래 동안 장악하려는 술수를 성경에 그 근거를 두려고 애를 쓴다.

차지한 교권과 조성된 재력을 오래 동안 누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신약초기 유대 사회의 종교 정치를 그대로 옮겨와 성경에 근거한 교권 장악을 시도함이다. 그래야 한국교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 성도들의 눈을 피해 갈 수 있고 누가 무어라 하면 성경의 내용을 방패 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차입이 가능한 체제는 유대교의 조직체인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정치 체제이다. 유대사회의 정치 조직은 정치와 종교를 평정한 거대한 바리새파와 규모는 작으나 성전을 장악한 사두개파, 그리고 에세네파와 헤롯당 등이 있는데 이들의 체제는 당시대의 종교와 정치가 야합하여 백성들 위에 군림한 전형적인 제정 일치시대 산물이다. 이들은 종교와 정치를 한 손에 쥐고 권력유지와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고, 집단 이익을 통해 개인이 부를 축척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정치와 종교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다.

지금 한국교회 속에는 “ 기독교지도자 협의회, 한국교회연합회, 한국보수교단 지도자 협의회, 한국기독교총 연합회, 한국교회 협의회, 목회자 협의회 ” 등등 저마다 내로라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한국교회의 연합 조직을 조립하였다가 수틀리면 해체하고 그러다가 식상하면 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던 그 사람들이 또 다른 단체를 만드는 현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개되는 현상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속의 갈등이다. 회원이탈, 회원 제명 등이 앙갚음처럼 전개되고 또 유사한 단체를 조직하기위해 떨어져 나온 지도자들이 꿈틀됨이다. 언제까지 모였다 이익이 없으면 뛰쳐나와 다시 모이는 저급한 정치 행동을 멈출 수 있는가? 서로 역지사지해서 이해하고 참고 견디며 한국교회를 위해 희생 할 수는 없는가? 내 이름이 대접받으면 협력하고, 내 이름이 푸대접 받으면 반기를 드는 세속 정치인들과 같은 습성을 언제까지 유지해야하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번 맛본 권력 독점의 재미 빼앗길까 두려운 것일까?

신약초기 유대 정치와 종교조직은 무소불위의 힘으로 메시야를 십자가에 처형하는데 사용했다. 종교정치인들의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자 백성들은 권력을 틀어쥔 자들에게 빌붙기 위해 철저히 비굴해 지기까지 했다. 정치는 오늘 원수가 내일 형제가 되고 또 원수가 되는 악순환은 양심 없는 유령인간들이 꾸미는 정치놀이다. 가정이나, 집단이나, 사회나, 기업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정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면 누가 무어라하지 않는다. 권모술수에 능한 약삭빠른 자들은 그 단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싹이 튼다.

개별 교회로 구성된 연합조직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세상의 어느 집단과 같이 속되다 하지 않는다. 그런 이미지를 간직하고 보다 성스럽고 경건한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면 그 조직 하나만으로 선교와 전도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교단을 연합한 단체가 정치에 야심이 있는 목회자들의 정치 야욕을 키우는 정치 장으로, 그 연합 활동을 위해 교회 및 교단의 재정후원이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됨이 걱정이다.

기독교 연합조직의 사람은 그 얼굴인데 조직은 늘 새로운 조직이다 보니 역사성이 없다. 조직을 움직이는 몇몇 지도자들은 자신을 뒤 받침 하는 중대형 교회들의 재정 후원을 미끼로 교묘히 조직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고, 지지그룹을 통해 공조직을 사조직처럼 좌지우지 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 지도들은 자신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들이 건전성을 잃지 않도록 신앙심을 회복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세상의 물욕, 권력욕, 명예욕을 내려놓고 종의 자세, 섬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교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자리는 섬김의 자리다.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 조직의 수장들은 유대 종교정치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의 섬김의 자세가 마땅치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경계 대상이 되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아마도 교주를 몰라보고 십자가에 또 처형 하려는 생각을 가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종교정치의 폐해가 아닐는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오수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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