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출산                                     

                                      박재화

딸이 딸을 낳았다
내 품에서 재롱떨던 것이 어느 새
제 분신을 내놓은 것!
딸이 낳은 딸을 보며
저리 똘망한 생명을 불러온
위대한 모성 앞에 무릎 꿇었다

중앙아시아 초원
모래바람 속에 혼자 새끼 낳으며
사투를 벌이던 흑염소 앞에서
떨며 두 손 모았듯
딸이 딸을 낳은 무량한 침대 앞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았다

===================================================================================

▲ 정재영 (장로, 시인, 문화평론가)
시에서 언어 선택은 중요한 것으로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딸의 딸은 간단하게 말하면 외손녀다. 그러나 화자는 그냥 외손녀라고 해도 될 턴데 굳이 딸의 딸이라고 말하는 것은 딸에서 느끼는 감각을 그대로 딸의 딸인 외손녀에게서도 그대로 보존되어 감각하도록 하고자 함이다. 친손자와 달리 외손녀는 출가 하여 딸처럼  다른 가문을 이어나가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타인의식을 배제하고자 함이다. 부계혈통의 원형심상을 버리고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사랑 의식을 스며들게 하려는 것이다. 즉 딸이라는 사랑하는 존재의 또 딸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의 감각을 기승적으로 증폭하고자 하는 면에서 탁월한 언어 선택이 된다.

첫 연에서는 딸의 모성애를 외손녀를 통해서 진술하려 함이지만 2연에서는 생명 자체를 감탄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개인적인 애정에 대한 의식에서 더 한걸음 나아가 종교적인 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생명자체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감사한 마음을 외손녀의 출산을 흑염소와 비교하여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화자가 본 흑염소의 새끼를 낳는 경험이 외손녀의 탄생을 통해 확대된 생명의 신비로움으로 감사의 두 손을 모은다는 장면은 종교적 심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즉 첫 연은 외손녀를 통한 모성애의 통찰이라면, 2연은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말하고자 함이다. 

“사투‘라는 말에서 생명 보존의 경외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인류사 면에서 볼 때 한민족의 이동 경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면으로 해석한다면, 외손녀는 무궁한 역사를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존재라는 말로도 해석이 된다. 그 말은 외손녀를 통한 생명의 경외심은 곧 하나님의 창조섭리로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초원과 침대를 연결하여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려는 면도 보게 된다. 

이처럼 시는 숨겨서 노출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취한다. 이것이 은유이며 그 방법이 암시와 응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예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