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다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쇠약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고난을 만났을 때에 고난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고난 중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도리어 더 큰 은혜를 누리며 그 고난을 해쳐나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도 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사는 동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환희를 경험하며,, 최고의 희열과 감격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중에도 고난과 시련은 필연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정치, 경제, 학문, 종교 등의 각 분야에서 고도의 성숙에 이른 이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얻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는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싸워 이겨 왔느냐와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고난 없이 위대하게 된 사람을 생각하기란 어렵다. 개인만이 아니다. 한 나라나 민족 역시 고난의 때를 거치지 않고, 훌륭한 역사를 일군 나라도 없고 민족도 없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그 위대한 옥중서신(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을 썼으며, [천로역정]도 존 번연의 길고 긴 옥살이 중에 집필했다. 죤 밀톤도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맹인이 된 뒤에 영의 눈이 열려 [실락원]을 썼다.

왜 인간은 고난을 통해 성숙되어지며, 역사는 시련과 역경의 터널을 통과해야 비로소 비상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방관자가 아니시고, 오히려 고난 속에 오셔서 동참하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상세하게 소개하므로 해답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을 부활의 승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사람은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하였어도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받은 은혜가 흔들리고, 회의와 갈등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위대한 사도바울 같은 이도 온 몸으로 절규하듯, 피를 토해내듯이 고백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바울이 이 고백을 했을 때가 천하에 복음의 능력을 들어내며, 증거하여 외치던 바울 사역 후기(後期)란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가 그의 신앙여정의 종반기로 그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그 깊은 인격이 농익은 때였지 않은가.

바울만이 아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렇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대책 없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위로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무너져 내림이 심하였으며, 최고최상의 예언자로 비를 오지 않게도 하고, 오게도 하며, 갈멜산의 영적 전쟁을 당당하게 승리로 이끌며 승리의 표상이 되었던 선지자 엘리야도 그러했다.

한 때는 그 영력이 하늘을 찌를 듯이 대단했던 신앙의 용장들도 범인(凡人)들처럼 침체와 낙심의 때를 맞게 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개혁운동이 한참 이던 때에 루터가 엘리야처럼 기진맥진하여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상복(喪服)을 입고 루터 앞에 섰다. “누가 죽었기에 상복을 입었느냐?”고 묻는 물음에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루터가 발끈하여 “하나님이 어찌 죽을 수가 있는가.”하고 책망하여 물었더니 “하나님이 죽지 않고 살아 계시다면 당신이 어찌 그렇게나 낙심에 빠져 있을 수 있느냐”고 루터를 일깨워, 다시 힘을 얻어 종교개혁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에게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때로는 낙심하며 고뇌에 젖어들었다가 다시 힘을 얻어 새 출발을 하기를 반복하며 신앙도, 인격도, 인생도 성숙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2년을 돌아보고, 2013년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판으로 정치인들과 TV는 요란한데, 우리네 삶은 스산하고, 생경(生硬)스러워, 요란한 선거판에 뛰어들 마음이 영 나지 않는다.
그래도 성경 속의 믿음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주님은 2013년을 예비하셨고, 우리에게 까마귀로 음식을 예비하시고, 나단의 추상같은 교훈을 예비하셨음을 고난과 좌절 속에서 만나고 깨달았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국제신학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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