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어라
신 성 종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나는 바람이어라
때로는 비를 가져다 주고
때로는 눈을 가져다 주는
나는 바람이어라
싫어서 가는 것일까
좋아서 오는 것일까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나는
나는 바람이어라
원한이 서려
눈이 되었나
슬픔이 눈물되어
비가 되었나
나는
나는 바람이어라
바다가 가면
풍랑 만들고
산에 오르면
새가 되어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나는
나는 바람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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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연 마지막 행마다 화자 자신이 바람이라는 것을 구체적 진술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첫 연은 머물 수 없는 존재로써 바람이다. 2연은 비나 눈을 가져다주는 사명이나 직업으로써 바람이다. 3은 그 이유를 반복적으로 반문하여 재확인시키고 있다. 4연은 머물지 못한 결과를 말하고 있다. 마지막 연은 바람이 풍랑과 새를 만드는 전환의 상상을 통해 이중적 존재 모습을 말함으로 사르트르가 말한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를 통합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시의 목적은 존재 탐구다. 존재(sein)라는 말은 철학적 용어이지만 예술은 표현 목적상 결국 본질에 대한 태도이다.
이 작품에서 보는 존재의식이라는 말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규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면 시에서 보여주는 방법이 절대적이거나 내적이지 않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외적인 대상과의 상관관계설정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론은 문학사적으로 형이상시학(metaphysical poetry)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시론은 17세기 영국의 존 던의 작품에 대하여 드라이든이 말한 것으로, 엘리엇 등 신비평학자들이 현대시의 중요한 이론임을 밝히고 있다.
예시는 바람과 화자를 동일시시켜 놓고 있다. 즉 화자의 존재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람이다. 그 바람은 ‘머물 수 없는’ 것으로 특징진다. 즉 정착하지 못하는 이동성의 심리의식이다. 바람이 사명을 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떠돌이 삶이며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그것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런 거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떤 일에 매일 수 없는 신비한 손길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스스로 자기의 존재 위치를 결정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그럼 인간이란 누구의 손길에 붙들린 바람일까. 시에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밝히지 않고 숨겨둠은 독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추상화처럼 작가가 직접 말하지 않아 언뜻 불친절하게 보이나 실은 읽는 사람이 각자 해석해도 된다는 의미에서는 가장 친절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