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현장 사무업무를 맡은 나에게 계장이 찾아와서 그 제품의 행방을 묻기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시치미를 뚝 떼었다. 또 과장이 오고 부장이 오고 전무 이사가 왔다.

알량한 자존심에 한번 거짓말한 것을 번복하지 못해서 묻는 사람마다 모른다고 했다. 부서원들은 내 눈치만 보았다. 온 부서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오전에 발칵 뒤집혔다. ‘플란자’ 부품을 찾아라, 도대체 누가 가져갔느냐? 계장, 과장, 부장이 전무한테 혼줄이 나고 난리가 났다.

평소에 정직한 것을 좋아했던 내 성격인데 쉽게 생각하고 거짓말 한번 한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들게 다가왔다. 내가 어떻게 공적인 일에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는가 하고 양심에 가책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기회는 이때다 어차피 병들고 고통스러워 죽고 싶어 했는데 망가진 양심, 망가진 체면, 다 끌어안고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죽음을 결심했다.

점심시간에 조용히 회사를 나와서 책상 서랍 속에 준비했던 극약을 챙겨서 호주머니에 넣고 유서를 남겼다. 그 유서의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두어 가지 떠오르는 것은 ‘꿈도 컸고 이상도 컸는데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먼저 가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하는 내용과 ‘내 사랑하는 친구 동섭이에게 내 퇴직금을 다 주라’고 적었던 것이 생각난다.

무작정 회사 사원 아파트를 떠나 창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내렸다. 부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이 약국 저 약국 다니면서 수면제를 스무 알쯤 사서 모았다. 극약을 먹고 고통을 받는 것보다 수면제가 더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호주머니에 극약과 수면제를 넣고 또 무작정 속초행 시외버스를 탔다. 죽을 사람이 왜 그렇게도 망설이고 왜 그렇게도 시간을 끌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우습기도 하지만, 죽음을 피해가도록 움직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잠언 16: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시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아무리 마음먹고 계획해도 인도하시는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다.

설악산에서 생사의 문제로 이틀을 고민

밤늦게 설악산에 도착해 우선 여관을 정해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비싼 밥을 시켜서 잘 먹고 난 후 비가 오기에 우산을 쓰고 맛동산을 한 봉지 사들고 죽을 곳을 찾아 나섰다. 여관에서 죽으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되어 부모님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을 찾아 설악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중 밧줄로 묶어서 만든 다리가 있기에 위에서 밑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다가 짧은 순간 생각하기를 혹 머리부터 떨어져 바로 죽지 않고 팔다리만 부러지고 생명이 붙어 있으면 평생 불구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계곡으로 뛰어내리기를 그만두고 두 번째 장소로 바위와 바위가 얽혀있는 틈새를 찾았는데 물기가 많아서 약을 먹고 들어 눕기가 싫었다. 이해가 안되는 고민을 하다가 죽는 일을 내일로 미루고 여관방으로 와서 하룻밤을 지새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마음 한 편 구석에서 꼭 죽어야만 되나? 앞길이 창창한데,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유서를 남겼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수치와 자존심문제로 죽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당시 상황이 반드시 죽어야만 되는 상황인지라 상황치고는 참으로 몹쓸 상황이었다.

넓게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 가운데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현실적으로는 주의 종으로 쓰임 받을 사람을 사탄이 미리 알고 이리저리 미혹하고 끌고 다니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한 영의 역사였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했던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난처하고도 난처한 처지, 직장으로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안 돌아갈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 다시 부모형제를 안 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지극히 난처하고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기억할 것은 믿는 자들이 사탄의 장난에 속아서 불신앙으로 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죽음의 마음을 움직인 누나의 금식기도

그 뒤에 내가 주님 품에 돌아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간 나를 위해서, 당시 명지대학교회에 집사로 있던 누나가 평소에도 가족구원을 위해서 기도의 무릎을 많이 꿇었지만 그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단식기도를 드렸다. 생명을 드리는 누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내 마음을 움직이셨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설악산을 돌아다니면서 죽음의 문제와 싸울 때 나도 모를 평안이 찾아왔다. 죽음이고, 자존심이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희한한 평안한 마음이 가슴바닥에 넓게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약봉지를 길옆에 휙 던지고는 ‘살아야지, 내가 꿈꾸고 있는 이상이 얼마나 높은데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다시 속초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9시간 30분 동안 죽음을 건너뛴 자의 심정이 되어 앞으로 다가올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정리하고 삶의 현장인 아파트로, 회사로 다시 돌아왔다.

교회 다니다가 주님의 놓치고 세상과 죄악에 깊이 빠진 나를 위하여 밤낮으로 기도하던 누나는 명지대학교회에서 기도 대장으로 소문이 났고, 폐결핵 말기가 되어 각혈을 하던 남편을 기도의 눈물로서 살려냈고 급기야는 신학공부를 해서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인 광림교회에서 심장전도사로 일하는 여종이 되었다. 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누가 죽음의 문턱에 있는 자를 건져내겠는가. 주님 한분만이 가능하시기에 그래서 기도로서 부르짖고 아뢰어야 한다.

기도는 단순히 대화의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과 열쇠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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