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성탄절의 분위기는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경기 악화와 더불어 한파까지 겹치면서 거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과거 거리마다 가득했던 크리스마스 트리나 캐롤송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처럼 성탄절 문화가 퇴색하고 있는 것은 경기 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교회의 책임이 크다. 이는 매년 석가탄신일마다 온 거리가 연들의 물결로 일렁이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해마다 성탄절이 예전과 다르게 썰렁하게 느껴지는 것은 교회의 영향력 감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에서 성탄분위기가 퇴색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회의 영향력 상실, 교인들의 감소는 소중한 크리스마스의 추억마저 앗아가고 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크리스마스 추억에 젖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성탄절 카드?보내기 등 성탄절의 풍경을 알 수 없겠으나 중년층들은 그래도 어릴 적 기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크리스마스 추억 때문에 훗날 종교를 택할 때 기독교인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12월이면 당연히 크리스마스 계절로 알고 길가엔 온갖 종류의 성탄 노래와 전등으로 장식된 십자가 등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다. 뿐만 아니다. 성탄절이 다가 올수록 기독교인들은 불우한 이웃돕기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교회도 평상시와 달리 지역 사회에 불우한 이웃을 돕는 각종 행사를 벌였다.

적어도 12월이 오면 우리 사회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음만큼은 훈훈하고 풍족했다. 왜냐하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달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쉽게도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기독교 문화가 사라졌다.

교회에 하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도 사라졌고 캐롤송이나 그 흔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거리는 어둠과 추위로 가득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는 교회 청년들도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개인 이기주의만 가득한 구두쇠 같은 인상을 하고 거리를 화보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화려한 술집이나 환락가 거리만을 찾으며 비틀거린다. 이것이 오늘 크리스마스의 풍경이다.

이렇게 죽은 사회로 변한 것은 교회의 책임이 크다. 복음선교를 외치면서 정작 복음사업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독교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생각을 갖도록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복음선교의 성과는 기독교 문화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그 사회에 뿌리는 내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 문화를 그 뿌리마저 말라 죽도록 방치한 것은 오늘 우리 교회요 기독교인들이다. 아울러 불우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정신도 말라버렸다.

세상이 갈수록 흉악한 범죄만 늘어가는 것도 오늘 우리 기독교 문화가 황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점점 더 인간성은 사라져 가고 이웃에 대한 인간적 관계보다 서로 경계하고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하는 삭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 모든 현상은 교회의 타락과 연결된다. 교회로서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고 물질을 숭배하는 우상주의 신앙이 활개를 치다보니 한국교회는 어느새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망각하고 말았다.

인류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옴으로써 하늘엔 영광과 땅에 평화를 이뤄지는 구원의 희망과 사랑의 기쁨이 온 세상에 전해져야한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뜻 깊은 의미를 잊고 물질만을 추구하며 돈과 환락과 사치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이 땅에 기독교 문화를 꽃피워야 할 것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을 만방에 전하여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이나 절망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구원의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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