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성탄절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타임지에서 2000년 동안 인류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 바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그리스도임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는 아니지만 신비적 사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탄은 신비적 사건입니다.

첫째로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신비입니다. 요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총장이 학교 수위를 하고 큰 회사 사장이 길에서 풀빵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빅뉴스가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낮고 천한 말구유에 탄생하신 사건이야말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역사를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을 전후해서 BC와 AD로 나누고 있는 것도 성육신의 사건이 최고 최대의 신비의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매년 맞는 성탄절이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무덤덤하고 형식적으로 성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둘째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이 분은 마땅히 섬김을 받으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막 10:45에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회는 신분이 높아질수록 대우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것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 넘는 또 하나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래 전 한국의 목사님 20여명이 미국의 유명한 교회를 탐방하게 되었는데 그때 공항까지 교회버스를 가지고 환영 나온 분 중에 버스기사가 그 교회 원로목사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 온 목사님들은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빌 2:6-7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섬김의 삶이 오늘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될 삶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셋째로 예수님은 성육신하시고 섬김의 본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기에 그 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빌 2:8에서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심이라”고 하였고, 롬 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기에 신비적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 중에서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의 시작은 곧 인류 구원의 십자가로 완성된 것입니다.

넷째로 이제 우리는 이 놀랍고 신비한 성탄절을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됩니다. 성탄의 주인 예수님은 요 13:34에서 “세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명령하셨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합니다. 누가 날 사랑하였기에 나도 그를 사랑하는 것에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받지 못한 수많은 외롭고 소외된 자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년 연말이 오면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표어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두고두고 음미해 봐야 할 구호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원로목사요 문학가인 최효섭 목사의 ‘가슴 설레는 계절에’란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거리마다 캐롤 울려 가슴 설레이는 계절에 작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내 가슴이 설레이게 하소서. 다이어트를 걱정하면서도 굶주린 이웃을 잊어버리는 것과, 맛을 선택하면서도 배고픈 아이들을 잊어버리는 것과, 병들어서 의료혜택마저 없는 이들을 잊어버려가는 나의 무딘 영혼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여. 내 가슴이 욕심을 꿈꾸며 설레이지 않게 하시며, 사랑할 사람을 생각하며 설레이게 하소서. 미운 짓 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얄밉고 깐죽거리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를 비방하고 중상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이 탄생하신 이 복된 계절에 내 가슴도 사랑 때문에 벅차게 하소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나도 그 주님 앞에 그 언젠가는 섰을 때 ‘사랑하다가 여기 왔습니다’라고 설레이며 보고 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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