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받아
영혼의 주름에 뿌린다.

뜨거운 햇살 받아
젖은 영혼의 주름을 편다.

푸르름 찾아
주름 없는 영혼은
높이 높이 날아 오른다.


▲ 정 재 영 장로
영혼이란 종교적인 술어다. 동양에서는 혼백(魂魄)이라고도 하여, 혼은 죽은 사람에게 관계되고, 백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계된다. 혼비백산이란 말이 정신이 빠져 나간 초죽음 상태를 일컫는 것처럼,  전자는 죽은 후에도 영원한 실체이고 백은 살아있을 때 작용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정신을 일컫는다. 

 기독교는 인간 구성을 이분설과 삼분설로 나눈다. 이분설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한다. 삼분설은 영혼을 다시 영(soul 푸누마)과 정신(sprit. 푸쉬케)로 나눈다. 신학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이분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제목 ‘영혼’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영과, 정신이라는 의미에서 혼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이 작품은 주름을 펴는 다림질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주름진 옷을 펴기 위해 다림질할 때 먼저 주름을 분무기로 축축하게 만든다. 그러나 1연에서는 분무기를 가랑비로 대치시켜 놓고 있다. 가랑비란 기독교에서는 성령의 단비를 상징한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인간의 구겨진 모습을 회복가능하다는 것이다. 2연의 ‘뜨거운 햇살’ 도 신적인 강열한 작용을 말한다. 1~2연에 나오는 가랑비와 햇살이 비유하는 의미는 전적으로 신의 은총임을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주름이 펴진 영혼이 찾는 곳의 푸르름이란 단순한 자연의 색이나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초적인 생명의 본질과 그 생명이 추구하는 목적지인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주름진 상태인 죄인이라는 것과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은 성령의 도움과 하나님의 강열한 사역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종교적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본문 안에는 전혀 종교적인 술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을 문학적인 비유와 상징어로 형상화시켰다는 면에서 미학적 수준을 인정한다.

한국 기독교시인협회 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