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준으로 낮춰주신 것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초대 교부시대부터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는 용어로 “어코메데이션”(수용가능하게 낮춰주심)이라고 풀이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계시하신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명령하고 호령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과 본성에 따라서 내려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담겨있는 낮춰주심과 겸손의 원리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한 결 같이 발견된다.

지식을 많이 가진 대학교수나 박사가 어린 아이에게 가르치려면 모든 것을 낮춰서 설명해야 한다. 박사의 지식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 말이 통하게 되려면, 어려운 낱말이나 비유는 필요 없다. 가장 쉬운 단어로 어린 아이의 수준에 맞춰서 설명해야 알아듣는다. 

“야라드 원리”는 창세기 3장 8절에서도 발견된다. 서늘한 날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만나고자 내려오셔서 걷는다고 표현되어진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죄 한 인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담겨있다.

창세기 22장 11절에서도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불러내는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나님께서는 사실상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보고 계시면서, 먼저 사태를 종결짓고자 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출하시고자 함이다 (시 34:7).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처럼 옛 언약에 담긴 “야라드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 성경의 원리를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해해야만 한다.“야라드 원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 피조물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맺으시는가를 보여주신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야라드의 원리”를 보여주셨다.


이것은 장차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의 이름을“임마누엘”이라 하였다. 임마누엘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죄의 굴레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먼저 낮고 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것이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상호 소통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 고난당하는 백성들의 상태를 다 파악하고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주신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모세가 해야 할 임무를 알게 하셨다.


모세가 구원자의 임무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앞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 확증을 주셨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한다. 모세를 파송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이 구분이 하나님의 자존성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세계에 속한 분이 아니요, 자연만물에서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독립성”과 유일성을 드러낸다. 떨기나무 자체는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하나님의 임재선포의 형식으로 불로 표현한 것이다.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언약

17세기 영국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7장에는 낮춰주심과 언약은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진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낮춰주심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언약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서 먼저“자발적으로”겸손해지셨다 (voluntary condescension).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여 오직 정죄를 당해야 마땅한 자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성을 맺으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기에 피조물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성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직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아무런 죄를 범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에게 찾아오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 주어졌고, 아담이 순종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아담과 낮아지셔서 상호 소통을 하셨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아담은 창조주에 대해서 관련을 가진 존재로서 책임을 져야만 했었다. 피조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는 몰랐다고 하거나, 핑계할 수 없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언약은 이미 맺어져 있으며, 영원토록 이 관계성은 유지된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해서 순종해야하고, 의무적으로 지켜야할 것이 있다. 인간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다르게 구성되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대한 관련성과 방식은 바꿔진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지속하셨다. 진노와 심판으로, 다시 은혜로 타락한 인관과의 관계를 맺으셨다. 그 관련성, 교제의 목표는 죄에 빠진 자들 가운데서 일부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속사역에 관련되어 있다.

다시 출애굽기 3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모세에게 알려 주신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자 하되,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조상들과 관계를 맺어 오셨음을 설명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번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방법이다. 출 6:7, 렘 7:23, 11:4 등.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신다.

출애굽기 2:24-25절에서도 하나님은 스스로 언약의 하나님,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으로 규정한다. 그 민족과의 관련성을 말하고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곧 그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소유하신 백성이라는 관련성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벧전 2:9). 이집트에서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으로 드러내신다. 고난당하는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하나님의 언급을 강조하였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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