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제살 깎아
초록 향기 피워 올린 나무
가을이면 수액 거둔 채
긴 겨울 채비한다.
그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인 걸
난 미처 몰랐다.

고즈넉한 가을, 저무는 바닷가에서
온 종일 대지를 달구던 태양
사랑에 겨워지면 제 모습 감췄다
귀뚜라미 되어 돌아온다.
그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인 걸
난 미처 몰랐다.

하얀 천사 날개 짓 하며
살포시 내려앉은 나뭇가지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연두색 잔치 벌일 일에 골몰한다.
그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인 걸
난 미처 몰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
영원 안서 순환하는 시간인 것을
난 미처 몰랐다.


▲ 정 재 영 장로
‘미처 몰랐다’ 는 지금은 알았다는 말이다. 그 말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동시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제목 안에 나오는 ‘사랑’의 존재와 속성을 보여주려 함에 있다. 즉 사랑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동시에 현재성일 뿐 아니라 미래에도 존재할 거라는 불멸의 사랑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첫 연에서 봄 향기를 배고 있는 나무가 가을에 수액을 거두고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생명력을 보면서 사랑의 순환성을 빗대 암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사학적으로 중요한 점은 ‘초록 향기’다. 후각 이미지인 향기를 초록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변용하고 있음에서, 소위 공감각 이미지를 만들어 시의 모습을 더욱 탄탄하게 구성시키고 있다.

2연에서 바닷가에서 태양이 밤이 되어 귀뚜리미로 돌아온다 함은 이중적이며 상극적인 양극화된 이미지의 동원을 보여준다. 낮의 하늘을 상징하는 태양이지만 밤은 귀뚜라미라는 보잘 것 없는 벌레의 존재를 배치하고 있다. 전자는 시각으로 깨닫는 존재이지만 후자는 청각으로 깨닫는 존재를 말한다. 즉 거대와 미세, 밝음과 어둠, 시각과 청각의 이질적인 이미지를 배치시켜 사랑의 두 성격을 보여주려 함이다.

연의 눈보라 속의 나뭇가지의 모습으로 사랑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다. 하얀 눈과 연보라 잔치를 꿈꾸는 겨울과 봄을 상징하는 이미지도 앞서 말한 이중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겨울이 은유하는 고난 중에도 봄의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역경 속에서도 사랑은 변치 않음을 말하려 함이다.

4연은 결구로써 ‘미처’라는 과거의 시제와 ‘영원’이라는 미래의 시제를 말하는 현재의 깨달음을 통해 사랑은 영원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영원이라는 말에서 시간을 초월하는 것 초월적 존재의 속성을 말함으로, 사랑은 신적인 속성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면을 보면 융합시학의 중요한 이론으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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