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엽서를 가슴에 찬
주목나무 한 그루

하늘을 받들고
긴 세월의 산길에 서서
가슴을 파
부엉새도 키우며 사는 나무야

네 아픔에는
언제나
선 그은 일자 입술

어여뻐도 나는
머릿속으로만 토닥거리는
검불 같은 빚쟁이야

이생의 끝,
징검다리 건너
무궁히 살 세상 올라가면
표현할 수 없는 집,
그 황금 대들보에
피로써
네 이름 새기리라.


▲ 정 재 영 장로
시를 구분하는 하나가 사물시와 관념시다. 이 두 가지 시를 통합시키는 것을 융합시의 중요한 이론이다. 사물과 관념을 하나로 만드는 과정은 변용의 일종으로, 마치 핵융합처럼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서 미학적 에너지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일종의 충격파를 줌으로써 긴장미를 얻으려는 심미적 기전을 시도다. 이런 시를 융합시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형이상시학파에서 시작하였으며, 엘리엇 리처즈 등의 신비평학자들의 중심이론을 정리 발전시킨 새로운 시각이다. 

 이 시는 화자가 말하려는 중요한 관념을 주목나무 이미지를 든다. 화자의 원래 표현하고자 시도하는 의미가 주목과 하나로 용융되어 새로운 상상의 이미지를 생성시키는 것을 통합적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첫 연에서 주목나무는 ‘하늘의 엽서를 가슴에 찬 사물로 상상의 산물이다. 주목은 하늘의 뜻을 표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산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말씀을 전해주는 교역자나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같다. 즉 주목을 보고 하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주목이 가지는 의미를 내세에서도 기억하고자 한다. 내세를 ‘황금 대들보’를 가진 집으로 상징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황금은 변치 않고, 고귀하고, 영원한 가치를 말하는 것으로,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말한다. 즉 믿음으로 세워진 내세의 집, 천국의 거처를 말하는 것이다. 주목을 그 대들보에 기록한다는 것은 주목이 가진 가치를 영원히 새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가치란 2연에서  ‘가슴을 파’ 만든 ‘부엉이를 키우는 자기 희생정신과 헌신을 말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그런 어려움을 침묵으로 견디는 모습을 ‘일자 입’으로 표현하고 있다. 4연에서 화자는 그런 주목과 같은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이다. 그럼 누가 화자의 주목이 되었을까. 굳이 답을 밝힐 필요가 없다. 시란 화자 뿐 아니라 독자의 입장이 각각 달라 서로 자유롭게 해석하면 되니까 말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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