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국민의 25%가 한국교회를 이룬 인적 자원이다. 교회는 고유한 믿음을 신앙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간으로 살아가도록 함과 동시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데 필요한 법, 질서, 교육, 윤리, 도덕, 등을 가르쳐 신앙인의 인성과 심성이 올바르게 성숙되도록 한다. 지난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청해진 해운사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해운사의 실제 주인(?)이라고 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교회 시대에 복음 전도를 한다는 죄로 로마까지 호송되는 사도 바울은 아드라못데노 배에 실려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겨져 로마로 호송 되었다, 도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 침몰하는 과정에 사도바울은 로마 군인들과 선원들과 죄인들 모두 합해 276명 전원 구조에 전력을 추구했다. 바울은 선장과 백부장 율리오가 있었으나 끝가지 하나님께 기도로 생명 구하기 위해 배에 남아 죄인들 한 사람도 희생함이 없도록 다 상륙을 확인 한 후에 바울도 멜리데 섬으로 올라갔다. 기독인이라면 이 말씀을 한두 번 들었을 것이나, 거의 성경에 나온 옛이야기로 치부해 버린 결과 위급 시 신앙 실천을 못해 진도 해난 참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함이 옳지 않은가?

기독교 교육이 어디로 치우쳤는가? 아직까지 예수 믿으면 건강, 무병장수, 재물의 축복, 소원 성취 한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은 세속에 치우친 신앙인의 자질이 자신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앙인의 선한 양심이 드러나지 않았다는데 기독교도들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교회 강단의 가르침이 허공을 날리고 성도들의 예배 참석이 시간 때우기에 급급하다면 한국교회 예배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속빈 강정에 불과함을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1999년도 씨 랜드 참사도 그렇고, 이번 진도의 해난 사고도 신앙인들이 평소 신앙인의 양심을 지키지 않은 결과가 그대로 답습하였다는데 화가 치민다. 욕먹을 일 같지만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한다는 심정으로 이 일이 기독인 모두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를 이룬 지도자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성경의 참된 행동교본이 화석화되어, 성경은 그렇지만 실제 행동에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과거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외양보다는 실제에 중점을 두어 성도 개개인이 사회에 나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그 토대위에 세워진 현대교회는 외형은 눈부시게 발전 했으나 신앙교육에는 관심이 적고 성도들의 연보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연보를 꼬박고박 모아 성전이라는 미명아래 예배당의 건설에 만 치우친 모습이 아닌지? 과연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앞으로 방향이 옳다고 인정 하실는지 실제 하나님의 응답을 위해 간곡한 부르짖음이 요구된다.

한국교회는 기독인들이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같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기존 정통 교회들은 이 사건은 우리교단 또는 우리 연합회와는 무관하다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급급하다. 한 쪽으로는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는 이분법적인 자세로 사건과 연관된 기독교 이름을 사용하는 단체에 대해 선긋기에 선두를 다투고, 성토에 심혈을 기우린다. 기독교의 언론에 기획된 기사나 기고문은 자신을 백로요 그러한 원인을 제공한 기독교 이름을 사용한 사건 배경에 등장한 단체는 까마귀로 취급한 기고문을 통해 비판에 열을 올린다.

일이 터질 때마다 조용히 지내다가 자신들은 건전한 기독교이고  이러한 사건을 일으킨 자들과는 다르다는 변명만 쏟아 놓는다. 누구하나 큰 사건이 터진 원인이 신앙교육의 부재나 올바른 신앙 규범에 잘못된 점이 없는가를 돌아보거나, 내 일처럼 회개 자복하는 회개의 촛불은 점화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유가족 의도와는 다른 촛불이 점화되는 현상은 한국교회는 자신의 탓에 대해 너무 인색함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나와 다르면 바로 이단으로 정죄는 잘하나 실상 자신들의 치부는 감추며, 교회 교육상 성도들에게 비는 축복의 개념이 세상 복의 기준과 별로 다르지 않는 모호함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보여 준 범례는 본래 구제, 전도, 선교는 뒤로하고 성도들의 연보를 외형 변화에 치중하기 위해 부를 축척하고 있다. 결국 교회도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그러한 것을 목격한 유사 기독교 단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기성 교회를 이기는데 초점을 둔다. 세월 지나면 세상 사람들은 세월 호 선사의 실제 배경이 누구냐 보다 기독교 세 글자 만 기억한다는 사실을 자각 하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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