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녀를 모두 예일, 하버드, 듀크, 일리노이주립대 등 명문 대학에 합격시킨 박경이 사모가 ‘땅에서 자라는 하늘자녀’라는 책을 출간한 가운데 평범한 크리스천 엄마의 하나님 주도 학습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경이 사모는 가난한 불신 집안에서 일곱 딸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교 때부터 일하느라 야간 여상에 다녔고, 직장에 다니며 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 열아홉 살 때, 신학교에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생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했고, 3년 후 그 친구와 결혼했다.

결혼 직후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에 입학했으며 1학년 겨울방학 때 첫아들 경건이를, 4학년 교생실습 기간에 딸 사랑이를 낳아 기르며 교육전도사 사역과 학업을 병행했다. 졸업 후 둘째 아들 화평이를 낳았고, 넷째 아이를 품은 만삭의 몸으로 남편 유학을 위해 도미, 단 한 푼의 보조도 없이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 넷을 키우며 남편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아이들은 내가 낳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분이 아이들에게 부여하신 특성과 재능에 따라 하나님과 함께 키워야 한다는 청지기적 사명으로 자녀들을 양육했다. 그 결과 케네디 대통령의 모교인 초우트를 4년 전액 장학생에 이어 수석으로 졸업한 화평이가 예일, 하버드대학에 동시 합격하고, 경건이가 예일 로스쿨과 하버드 로스쿨에 동시 합격, 또 사랑이와 승리가 일리노이주립대학 어바나-샴페인에 합격했다.

막내 승리까지 대학에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하이패밀리 가정사역전문가 자격을 취득했다. 지금은 구약학을 가르치는 남편 임용섭 교수와 함께 상처받고 무너져 가는 가정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준비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경이 사모의 핵심적인 육아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지식 위주가 아닌 지능과 성품 위주의 조기교육을 했다는 점이다.

박 사모는 “제가 아이들을 키우던 때는 조기교육 붐이 온 사회를 휩쓸던 시기였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가 좋은 엄마로 인식되던 시절, 저는 아이들에게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시키지 않고 함께 놀았다. 지금은 조기교육의 부작용과 폐해가 교육학, 아동심리학, 신경과학계 등의 연구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회현상을 거스르는 제 양육방식 때문에 교육에 관심 없는 엄마, 시대에 뒤떨어진 엄마, 심지어 계모 취급까지 받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아이 스스로 관심을 갖기 전에 행하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했다. 당장에는 교육효과가 눈에 띄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부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떨어뜨리고, 학습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지식교육보다는 놀이를 통해 창의성, 집중력, 인내심, 끈기 등을 키워주고, 책과 친해지도록 하며,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어휘력, 표현력 등을 길러주는 데 주력했다. 저는 이와 같이 학습에 필요한 성품과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진정한 조기교육이라 믿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그런 성품들을 길러준 것이,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를 맡아 기르는 청지기로서의 엄마 역할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박 사모는 “제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사회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저는 제 아이들을 ‘내 아이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 생각했고, 저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를 맡아 기르는 청지기, 유모’라 생각했다. 따라서 세상적인 방법이나 내 생각, 내 판단으로 아이를 키우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부여하신 재능과 특성을 이끌어내고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의 기대나 판단으로 아이를 무리하게 억지로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아이의 성향과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려 노력했다. 이 때문에 ‘자식한테 휘둘리는 엄마’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제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아이가 너무 싫어하는 일이나 아이의 성향과 어긋나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고 반항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파괴되느니, 차라리 제 기대를 낮추거나 제 생각을 바꾸는 쪽을 선택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자세로 자녀를 양육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뒷바라지를 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계산과 판단으로 지레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겼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지혜로 예측하지 못했던 길로 우리 아이들을 인도해 주셨다”고 말했다.

박 사모는 “제가 미국 교육에서 가장 감동한 것은, 공교육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지식교육에 앞서 ‘나는 특별하다’는 자존감을 먼저 심어주는 것이었다”면서 “특별히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은, 그 어떤 지식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경쟁시대를 위한 정신교육으로 ‘너 자신을 이겨라’라고 가르쳤다는 점이다.

박 사모는 “공교육이 시작된 이후, 아이들이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경쟁도 시작되었다. 피할 수 없는 경쟁에 직면하게 된 아이들에게, 저는 남이 아닌 ‘너 자신을 이겨라’고 가르쳤다. 동료나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불행한 일이고,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제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했다. 아이들은 놀고 싶은 유혹, 게으름, 나태함 등, 자기 자신과 싸웠다. 제 아이들이나 저는 애초에 아이비리그나 명문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본 적이 없다. 각자 자신의 이전 기록이나 성적을 넘어서도록 노력하다보니,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아이들이 생겨났을 뿐이다”라고 했다.

또한 “엄마가 아이들의 공부에 관해 일일이 통제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고 자기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관리하는 중대한 교육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나태해지거나 게을러지면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는 게 어렵니? 그럼 엄마가 관리해 줄까?’라고 묻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 말을 들으면 정신을 차리곤 했다.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 감시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만 하기보다는, 제가 먼저 공부하고 책을 읽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본보기 교육은 자녀양육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넷째는 사춘기 아이의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태도를 공감과 이해를 통해 가슴으로 포용했다는 점이다.

박 사모는 를 “충돌의 시기 사춘기. 대학입학이라는 험난한 장벽을 넘어야 하는 아이와, 중년에 접어들어 낮은 자존감, 허무감과 싸워야 하는 엄마와의 전쟁을 저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들의 태도를, 공감과 이해를 통해 가슴으로 포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시기에 저는 부족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박경이 사모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켰다. 이를 위해 자녀들에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진로결정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책임질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물론 자녀들은 세상에 관한 지식이 부모만큼 많지 않다. 따라서 아이가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상황을 충분히 알려주고, 이를 토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