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의 투명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 소외된 이웃 예산편성 중요
복음과 초대교회 신앙공동체의 회복으로 선교의 경쟁력 강화해야

한국교회가 내년도 예산을 정하는 시기에 와 있다.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이 투명하게 쓰여지고 있는지(?) 일부교회가 목회자의 헌금 사용을 둘러싸고 잦은 마찰을 빚고 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의 재정운용의 현황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헌금이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창간특집을 기획했다.

  한국교회 재정의 기초는 헌금

  한국교회의 재정의 기초는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교인들이 낸 십일조 등의 순수한 헌금이다. 그래서 교회재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교회재정을 투명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인들이 낸 헌금은 재정위원들이 예산을 세우고, 공동의회 등을 거쳐 확정되어 집행하기 때문에 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1년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재정에 대해서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재투자하고 있다. 교회의 재정의 47%는 십일조 헌금이 차지하고, 나머지 52%는 주정헌금, 감사헌금 등으로 조성된다. 한국교회 헌금의 종류는 130여종에 이르며, 이 헌금은 재정위원회가 관리, 운영한다.

교회의 재정구조는 크게 교회내의 직접경비와 교회 밖의 간접경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교회내 직접경비는 교역자 급여를 비롯하여 목회비, 예배비, 교육비, 건축비 등을 말하고, 교회 밖의 경비는 해외선교비를 비롯하여 상회비, 사회봉사비 등을 말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교회 밖 직접경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활할 때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소외된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예산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 액수는 한자리 숫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교회의 내적예산을 제외하고, 나머지 예산은 건축비 등 교회의 바벨탑을 쌓는데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일부교단과 교회는 IMF한파 이후 직장에서 쫓겨난 실직자들을 위한 쉼터를 비롯한 요양원, 사회복지관, 무료급식소,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쉼터, 미혼모보호소, 노동자의 집 등을 운영, 교회재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 밖의 재정은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예산의 대부분을 교회 내에 매몰시켜 사회와 담을 쌓고 있다. 소외된 이웃들을 지원하는 일도 교인들에게 한정시키고, 넘치는 예산은 교회재산을 증식시키는데 투자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일부 교회는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제1금융권을 비롯한 제2금융권, 사채시장 등에서 돈을 빌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한국교회가 제1금융권에 지고 있는 부채는 20조원을 넘고 있으며, 매년 이자로 3조원이,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이 새 나가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가 선교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도시교회나, 농촌교회 모두가 지역사회의 가난사람들을 향해 재정의 일정부분을 환원했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는 교회마다 야학을 열어 무지한 백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의료봉사를 통해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 이러한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교회재정의 투명성을 담보해 냈다.

 하나님의 헌금은 투명해야 한다

  오늘 일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사회복사에 대해서 인색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품위유지를 위해서 하나님의 헌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이 호텔 등의 모임을 갖고 있는 사이, 농어촌의 작은 교회와 도시의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은 씁쓸한 미소를 띠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잦은 호텔모임과 해외여행은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고, 일부에서는 적그리스도 규정짓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일부목회자들이 호텔모임과 해외여행을 강행하는 것은, 교인들이 호화로운 모임과 교회의 사이즈로 목회자들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이같은 의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교회의 재정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해 내기 힘들다. 한마디로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호화로운 교회당 건축과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사용하도록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개신교의 이러한 현상은 일부교회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의 한국교회가 그런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밤하늘을 수놓는 십자가탑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오히려 십자가탑이 사회적 공공성을 저해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지역기독교연합회가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 십자가탑에 켜져 있는 불끄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많은 한국교회가 해외에서의 의료봉사, 교회재산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 예산의 40%이상을 교회 밖의 사회봉사 등에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에 비교해서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교회들이 재정의 상당부분을 부동산투기를 비롯한 교회당 건축 등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의 기본정신은 ‘사랑’

  기독교의 기본정신은 복음에 바탕을 둔 ‘이웃사랑’ 실천에 있다.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그것은 불우한 이웃과, 기아와 전쟁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인류에게 교회예산의 일정부분을 재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 교단과 교회가 예산의 일정부분을 육영사업과 가난한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 성서의 복음, 한국선교 초기의 신앙공동체로 환원한다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서’는 ‘가난한 이웃을 향한 보호법’을 만들어 하나님나라를 일구어냈다.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가난한 이웃과 사회로 재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성서의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며,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 회복은 현재 교회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과 역할, 그리고 활동 등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도를 말하고 있다. 때문에 일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민중을 위하여’, ‘민중과 함께’하는 교회로 전환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만이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교회의 공신력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 일부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민중을 위하여’, ‘민중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겠다고 나선 교회들도, 현재 교회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기성교회들과 다를 바 없이 변질되었다. 아무튼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헌금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해 내기 위해서 예산의 상당부분을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또한 세상을 향해서 한 선한 일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홍보 또한 체계적으로 벌여야한다. 교회예산의 투명성은 교회재정=사회봉사=사회적공신력 회복 등식이 성립될 때 가능하다. 신년도 예산을 편성할 시기에 이른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