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신호등이 점멸등으로 징징거리는 시간
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신음소리가 있어 귀 기울여 본다
어둔 광야에 나를 세우고자 한다는 직언 앞에 머리 숙였다

이 혹독한 계절
누구의 부름인가

언제 이렇게 연락이 닿았는가
이별을 고하고 달려온 바람이 환영만찬을 배설해 놓았다
그대의 삶은
꽃과 나무와 들풀을 대하듯 인간을 대하라는 메시지
저리 지친 목소리에 담긴 것을 보면 신은 다급하셨나 보다

그대는
누구와의 이별을 고하려 하는가

밤을 새워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바람의 군졸들
취침 시간 내내 그들로부터 연단을 받았다
생의 고락 그 이면에서 나는 단지 무영에 불과했다
이제야 비로소 찾은 신분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

▲ 정 재 영 장로
제목의 ‘바람’은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우선 첫 연에서 보면 ‘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부문에서 단서를 찾는다면 어떤 초월적인 인격체로 보는 것이 맞다. 더군다나 2연의 ‘부름’에 기댄다면 인간에게 소명을 전달하는 기능자임을 알게 한다. 3연의 ‘인간을 대하라는 메시지’에서는 바람이 사명을 전달하는 주체임을 더 분명하게 한다. 즉 바람은 신적인 존재나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다. 그냥 성령의 바람이라고 하면 시원하겠지만 시인이 암시적으로 보여주려 하기 때문에 굳이 밝히려 해서도 안 된다. 포괄적으로 어떤 진리에 대한 교훈으로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1연의 ‘점멸등’은 미래에 다한 불확실성이다. 3연의 ‘혹독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는 말은 삶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못한 과정에 있음을 알게 한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을 지라도 화자의 불안의식을 알게 해준다.  3연은 5연과 연결되어 있다. 바람의 군졸이란 삶 속에서 보여주는 바람과 같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여러 조건들을 말한다. 주어진 모든 조건들 안에서 바람이 일러주는 것들, 즉 삶의 현장에서 지각해내는 다양한 의미를 새겨보고 있다는 것이다.

 4연에서 ‘꽃과 나무와 들풀을 대하듯 인간을 대하라는 메시지’는 인간을 비천한 대상으로 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아름다운 창조물로 보라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의식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존재 목적을 깨닫는다. 다른 말로 하면 실존에 대한 자각, 우주에 대한 시야와 사명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이곳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3연에 나오는 ‘메시지’ 안에서 찾아낸 신 앞에서 화자는 귀한 신분의 재확립을 통해서 존재론적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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