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성전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거기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됩니다. 다윗은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내가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8-10)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하심을 믿을 때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가 있으며,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가 있었고, 또한 사도 바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는 사람 속에는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점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험하고 고통스런 인생의 밤을 지난다 해도 어느 곳에서든지 무릎 꿇어 기도하면 바로 그 자리가 성전이 되어 성전 된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마1:23)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메시야 일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다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원한 천국에서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룻기는 이방 여인 룻이 보여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룻의 믿음을 통하여 복음이란 민족이나 나라의 구분 없이 만인에게 부어지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복도 믿음을 지킨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이스라엘의 배교로 인해 가나안 전역에 가뭄이 들자 엘리멜렉의 가정은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고 거기서 두 아들은 오르바와 룻이라는 이방여인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엘리멜렉 뿐만 아니라 두 아들도 그 곳에서 죽게 되어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세 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나오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고 두 며느리에게 그들의 민족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결국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시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룻은 베들레헴으로 함께 왔습니다. 그 곳에서도 룻은 하나님을 섬기며 시어머니를 공양하기에 여념이 없던 중 이삭줍기에 나섰고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로 친족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으며 보아스의 특별한 호의를 입게 됩니다. 룻의 헌신적인 삶과 믿음을 보아온 보아스는 기업 무를 의무를 맡고 룻과 혼인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룻은 영광스럽게도 다윗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따르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가진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 뜻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믿음이 돋보이게 됩니다. 룻의 고백을 보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 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뜻을 우선으로 따르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교훈이 됩니다.
주은혜교회 담임/ 감리교중앙신학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