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해변에 어지럽다
바다는 하얀 포말을 밀고 당기며
열심히 해안을 다림질하여
갈색 비단을 펼처 놓는다

사람들은 그 위에 발자국을
다시 찍는다
수천 년을 두고 바닷가에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발자국과 파동의 밀고 당김
인간과 자연의 줄다리기

▲ 정 재 영 장로
밀고 당기는 파도 모습과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 모습의 행동을 보면서 시의 정의를 말하고 있다. 

 그럼 단순히 시 정의만을 말하려는 걸까. 아니면, 시라고 하는 예술행위를 통해 가치 있는 모든 행위의 정의를 대신 보여주려 함은 아닐지.

  이 작품은 형식상 내용이나 구성이 단순하여 이미지는 매우 선명하다. 내용은 해안의 모래에 찍힌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파도가 지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를 만들 때 썼다가 지웠다가하며 수정하는 창작과정을 말하는 것이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더라도 무방하게 된다. 즉 파도로 암시하는 거대한 존재, 즉 신적 존재가 인간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자연스럽게 된다. 더욱이 시가 제의(祭儀)행위에서 기원을 가졌다는 이론으로 보면, 그런 해석도 무리가 아니다. 시를 만들 때 잘못된 부분을 지우고 수정하는 행위를 파도가 모래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는 행위로 은유함에서, 인간의 죄를 늘 지워주는 신적인 행위와 닮았다고 확대 해석해 볼 수 있다. 시인의 창작 행위는 마치 완전한 인간의 회복을 위해 은혜를 베푸는 신의 모습과 같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아닌 인간의 죄 흔적과 신이 베푸시는 은혜의 구속사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짓는 잘못과 허물의 실존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사죄 은총도 마찬가지임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럼 왜 이 작품이 강한 미학성을 가진 걸까. 그것은 내용이 아닌 표현양식에 있다. 즉 파도를 신적 존재로 변용한 것도 그렇거니와, 드러냄의 방식에서도 기발한 착상(기상. coceit)을 불러오는 수사학적 기법에서 기인한다. 파도가 발자국을 지우는 모습을 ‘다림질하여’라고 하는 것이나, 흔적이 지워진 모래를 ‘갈색 비단을 펼쳐 놓는다’는 표현은 예술적으로 형상화 구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론으로 시를 만드는 일이 파도가 모래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죄를 통한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최고의 예술작업인 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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