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한 번도 눈으로는 목격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한 믿음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구원을 받은 증거가 확실하다. 마음 속에 가장 신뢰하고 따라가야 할 생명과 진리를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믿음이 작동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은 신비롭게도 성령께서 주시는 까닭에 지워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을 받아들이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게 되면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즐거움과 기쁨과 영적인 구원을 베푸신다.

다소 특수한 분들의 체험이 남다르게 주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던 자였다. 그러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던 중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눅 5:1-11).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히자,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서 압도당했다.

이제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이 다 이런 체험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하셨다 (행 9:1-9). 그러나 그 밖에 많은 성도들은 결코 그러한 사건들이나 초자연적인 체험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똑같이 초월적인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시는 것은 아니다. 부르심의 목적와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 각각 다르게 임하신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동일한 믿음을 받게 된다.

베드로전서 1장 8-9절의 설명을 잘 새겨보면, 믿는 자의 마음과 영혼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을 전혀 본적도 없고, 만져보거나,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관한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성도들은 참된 진리를 찾은 흥분이 있고, 평안과 사랑을 받은 감격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심, 변함없는 믿음 등이 생겨나서 마음속으로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하게 된다. 2천 년 전에 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원 전부터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며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0) 소개하여 주셨다고 말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제시해 놓았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 멸망당하지 않도록 구원하여 내고자 세상에 보내셨다.

그 사랑이 너무나 넓고 크고 오묘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많다.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을 통해서 읽고 파악해 나가게 되는 감동을 가지게 되면 구원의 감격과 확신이 가득하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그 믿음이 견고하고 강력하게 될 수 없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즉시 일어나는 완성된 축복이기도 하고,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진행형이기도 하다.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옛사람의 흔적들과 욕망들이 남아있다. 기독교 신자가 되겠다고 하지만, 한번에 다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죽이고 버리는 반복적인 회개가 일생을 통해서 이루어가야 할 성화의 과정으로 주어지는 바, 성령의 감동과 위로하심으로 구원이 적용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간다.

때로는 한국 기독교인들 중에서, 혹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주변에서 충격적인 실수를 하기도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로 구별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심지어 교회의 지도자들이라고 존경을 받아온 목회자들이 실망을 주기도 한다. 과연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핀잔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진짜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다시 회개하고 뉘우치면서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벗게 된다.

또한 들판에는 추수할 곡식들 중에 “알곡”과 “가라지”가 뒤섞여 있다.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구별하여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실하게 거듭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증거하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구원의 확신을 철저히 가지게 된다.

그러면 성도들이 구원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가져야할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다 (엡 1:4). 참된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로 간주된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계속해서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들은 참된 회개와 믿음의 고백을 한 자들이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은 자이다 (고전 1:18, 고후 2:15). 성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엡 2:5,8).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각각 개인적으로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회심의 순간이 곧 구원의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따라서, 사람이 다 알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성령의 신비로운 사역이 있다. 성령이 하시는 시간과 시점을 사람이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단들은 집요하게 이런 성령의 초월성을 파고들어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혼란을 부추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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