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한국교회의 건전성과 위기에 대한 해법은 헌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이다. 연간 성도들의 손을 거쳐 한국교회로 들어오는 헌금의 규모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금이 십자가를 높이 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하는 교회 재정 금고로 들어온다. 지난 과거는 교회 운영정도에 불과 하였으나 지금은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에 헌금된 연보를 거의 빈약한 교회건물 을 개선하는데 주로 사용했다. 초가집을 양철 지붕으로, 기와지붕으로, 단층 건물에서 2층 건물로, 소형 건물에서 중형 건물로, 대형 건물로, 그리고 내부 인테리어를 깨끗하고 청빈한 모양에서 최고급 사양과 실내 장식으로, 심지어 최첨단 장식과 기구, 악기, 등을 구비하는데 재정이 투입되었다. 어떻게 보면 중세시대 천주교의 내부 인테리어를 모방하는 쪽과 눈으로 보는데 치중했다. 이는 영혼구원보다 외형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았나 하는 염려되는 부분이다.

세계적인 교회 건물들이 즐비한 한국 교회와 주변의 자화상은 극과 극을 보는 것과 같다. 교회 건물의 고급화와 화려함은 날로 더해 가는 반면 교회 주변에는 생활고에 허덕이는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이혼과 가정 파탄으로 인한 가정해체로 인해 고아 아닌 고아가 양산되는 문제가 산적하다. 그런데 교회는 그들에게 관심도 없고 돌보지도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교회 모습이다. 세상에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지금의 모습으로서는 판단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이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달라져야 한다. 교인들이 내는 헌금은 교회 내부만을 위해 사용하는 누를 범 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이 교회에 헌납하는 연보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은 물량적으로 부동산 확보나 고급 건축이 아니라 유기체인 사람들의 영혼 구원이다. 이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의 연보가 사용되어야 함이 성경적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헌금을 교회가 필요로 한 목적 아닌 목적을 세운 범위 내에서만 사용한다. 그 목적이 성경적이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고 믿지 않는 점이 문제이다.

본래 성경에 교인들이 헌금을 해야 하는 목적은 전도와 구제, 선교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는 성도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정성으로 다해 드려진 헌금에 대한 성경적 지식이 부족해 헌금이 성경의 계시에 의한 관리와 지출이 되는지도 모르고 있다. 헌금을 하는 성도들 또한 교회에 헌금한 연보가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가에 대한 감시 기능이 허술하여 실제 사용하는 곳이 하나님의 의도를 따르고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연보를 하기는 하되 실제 사용처에는 무관심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은 사회의 경제 여건이날로 새롭게 되어 교회의 재정 여건이 풍부하자 당해 연도의 예산을 모두 사용하지 않고 계속해 건축이라는 목표를 정한 후 헌금을 적립해 쌓아 둔다. 도시의 어떤 교회는 수천억 원을 모아 세계 최대의 교회 건축물을 짓는 일을 감행했다. 이는 교회가 성도들의 각종 헌금을 하나님의 성물이라고 하면서 실제 사용에 하나님의 뜻은 제쳐두고 세속적인 생각으로 건축에 올인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다 보니 중소 교회들도 성도들에게 힘에 겹도록 건축 헌금을 독려한 후 재정 부족을 매우기 위해 무리하게 은행대출로 중소 교회가 대형 교회 흉내를 내다보니 급기야 건축 중도에 문을 닫거나 매물로 처리되는 예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혹 교회가 재정을 건축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목표한 금액이 찰 때까지 쌓아 두는 동안 헐벗고 굶주리고 병사하는 영혼들이 있으니 쌓아둠이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는 헌금 사용에 대해 건축에 치중하던 세속적 방식을 떠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 하는 선교와 구제와 전도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의 모든 역량을 더 큰 교회, 더 큰 건물 건축을 위해 전 예산을 올인 했다. 아마 그렇게 하여 오늘의 한국교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예산 운영의 방법을 성경에 계시된 성경적인 사용방법으로 환원함이 옳지 않은가?

초대 교회 예산 운영은 성도들이 자원해 드린 헌금, 헌물을 사도들은 관리할 집사들을 선택해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 구제와 선교와 전도를 위해 사용토록 했다. 그 결과 교회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사회인들은 스스로 교회에 몰려왔다. 한국교회의 위기 해결은 겉만 화려한 건축이 아니라 헌금 사용이 제자리를 찾는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필운그리스도의 교회/본지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