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누구나, 그리고 어느 때든지 고난을 경험하는 것은 사실 필연이다. 불치병으로 괴로워하거나 생활고로 탄식할 때도 있다. 의(義)를 행함으로 오히려 조롱과 비난을 받아 고난당할 때도 있다. 고난 중에는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극단의 고난도 있다. 우리 인생 중에 예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고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고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의 신앙과 삶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욥 36:15)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는 널리 알려진 무신론자이다. 까뮈는 신이 없는 근거 중의 하나로 “무고한 사람들의 고난이 널리 퍼져 있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하였다.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신이 없는 증거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 욥기서는 까뮈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는 성경이다.


욥기를 일컬어 고난문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양문학사에서 3대 걸작을 꼽으라면 단테의 신곡과 괴테의 파우스트와 성경 욥기서를 손꼽는다. 욥기의 주제는 “의인(義人)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이다.
성경 중에서 행복할 때 읽는 성경이 아가서이고, 불행할 때 읽는 성경이 욥기서다. 욥기는 극심한 고난과 탄식 중에서 읽고, 그 고난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욥기 36:15,16절의 말씀은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를 교훈하신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고난은 우리를 깨우치고, 교훈을 얻게 하는 교육과정이란 것이다. 일컬어 고난의 훈련소(苦難의 訓鍊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대가 겪은 고난을 체득(體得)하지 못한 세대는 다시 그 고난을 되풀이 하게 된다.”는 역사에 대한 격언이 있다.  우리민족에게 한 가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습성이 있다. 고난의 세월을 겪으면서 그 고난을 통한 교훈을 학습하지 않고, 쉽게 잊고, 쉽게 지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배워야 할 바가 크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처럼 고난의 세월을 겪어오면서 자신들이 겪은 고난 속에서 교훈을 얻어 고난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민족적으로 키우고, 확립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과 고난의 세월을 감내하면서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깨달았기에 개인에게도, 민족에게도 그 고난이 유익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성도의 고난은 그를 겸손하게 한다.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참된 모습 즉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므로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은혜가 있다.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시 119:71)고 고백한바 있다.

사람은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자기의 교만함과 무서운 죄악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의(義)를 자랑하던 사람이 죄인 됨을 고백하는 은혜를 받는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은 고난당할 때 찾아온 친구들에게 반박도 하고, 변증도 했다. 그러나 결국 욥은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 하리리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욥 40:4)이라고 고백한다.

사도 바울도 그 시대에 어떤 사람과 비교하여 교만할 수 있는 조건이 넘치게 있었지만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더욱 겸손해질 수 있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97:67)

고난의 세월을 겪기 전에는 자기 잘난 것에 취하여 세상을 모른 채, 헛된 인생을 살았는데 고난의 낮과 밤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올바르고 복된 인생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시인은 간증한다. 그래서 고난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고백이다.

우리는 너무도 조급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했던 것처럼 시간을 두고 일하신다. 따라서 성경 속의 위대한 신앙용사들은 모두 오랜 고난의 훈련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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