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호 관 목사

 저녁 먹거리 준비에 부산하다. 무엇일까 궁금해서 부엌을 기웃거리는데 앞을 가로 막아선다. “오늘 저녁은 별식이야요. 미리 보시면 보안상 안됩네다.” 여지없이 돌려 세웠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15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들어 왔다.

지난 토요일에 D시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선상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북쪽 산야가 내려다뵈는 땅 여기, 저기를 두루 거쳐 선지동산까지 왔다는 얘기를 대충 들었다. 청년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지쳐도 한 참이었을 시간인데 밤이 깊은 시간까지 찬양하고 부르짖고를 반복한다. 언제 마쳤는지도 모른 채 나는 곯아 떨어졌고 새벽을 깨우는 종소리에 일어나 그 젊은이들을 예배 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지은 너 대 평 남짓 되는 공간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동영상을 찍을 기기까지 고루 갖추었으니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산속이라고는 하지만 길거리에 인접해있어서 항상 조마조마 가슴을 조렸는데 이제는 안심이란다. 집 주인의 배려로 건물 뒤편 공간에 강의실에 방 둘, 그리고 화장실까지 만들었으니 정말 머리 쓴 흔적이 역역하다. 세상에 이런 학교는 없을 것이라 싶다.

학비는 전액 장학금이고 주말이면 연보하라고 용돈까지 준단다. 먹이고 재우고 그야말로 전교생 풀 스칼라십을 시행하는 학교가 세상 어디 흔한가? 그뿐 아니다. 매월 꼬박꼬박 급료도 지급한다. 옛날 처음학생으로 입학했던 7명의 영적거인들을 배출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세운 평양신학교를 재건하겠다는 옹골진 꿈을 가지고 8년여 전에 시작한 평신에 지금 내가 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2% 중 한 사람인 왕 언니에 어촌의 가난한 촌부 안 언니, 두 사람이 총 학생회를 구성했다. 전교생 둘에 교직원이 다섯이니 초미니 학교인 셈이다 그러나 어둡고 황무한 땅 NK에 빛을 발하겠다는 그래서 그 땅을 새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워보겠다는 열화 같은 꿈을 안고 늦깎이 정열을 불태우는 두 여인의 모습이 눈물겹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길게 줄 지어 서란다.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은 그 학생이 솥뚜껑을 열고 국자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 먹을 음식은 남새탕(나물을 넣고 끓인 강냉이 죽)이라고 소개했다.

국자로 휘휘저어 작은 죽 그릇에 채워진 것이 보도 듣도 못한 그 남새 탕이라는 것이었다. 차례로 죽 그릇을 받아 식탁에 놓고 앉은 청년들의 입에서 깊은 한 숨이 새어 난다.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소금 그릇이 있을 뿐 반찬은 아무 것도 없다. 국자를 든 학생이 입을 열었다.“이 죽은 저쪽에서 어쩌다 먹는 별식이 아니라 주식입네다. 이것도 없어서리 하루 한 번 입네다. 봄에는 새로 돋는 풀을 뜯어 죽을 쑤고 여름이면 보리로, 그리고 감자를 캘 때면 감자 죽 입네다.

이 남새 탕은 무총이나 배추 시레기를 말렸다가 그것을 삶아스리 잘게 다진 다음 그기 강냉이 가루를 섞어 끓이는데 초겨울부터 먹기 시작해서 겨우 네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월동식입네다. 이거는 여러분을 위해스리 특별히 뒷밭에서 딴 생강냉이로 끓였고 제법 먹어 볼만한 죽입네다.

저쪽에서는 이거 가지면 서너 끼니는 족히 먹습네다.”감사기도까지 그 몫이었다.“하나님 아버지! 북에 내리신 진노를 거두셔서 이 죽이라도 배불리 먹게 해 주세요.”한 마디 하고는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한 참이나 지나“배곯아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우리 어린애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 없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 주세요.”이번에는 죽 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란다. 그리고 북녘 땅의 배고픈 영혼들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하고 청년대표가 마무리 기도하라는 선교사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식사기도가 아닌 통곡으로 이어졌다.

산속 신학교간이식당의 진풍경이었다. 제법 뜨거운 죽 그릇을 받쳐 든 손들이 그렇게 거룩해 보일 수가 없다.“주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소서! 너무 먹어서 비대해졌고, 아까운 줄 모르고 음식을 버린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북녘의 어린 우리 아우들을 기억하소서! 이후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 남새 탕을 기억하게 하소서!”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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