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 먹으면 맛이 없습네다
그냥 이빨로 베어 물으시라요
메밀향이 입안에 고인단 말입네다
냉면 사리를 잘라 달라는 한국 손님들에게
단호하게 한 수 가르치는 평양관 복무원 아가씨,
잎새 나기 전 붉은 꽃부터 달고 나오는
무악재 뒷산 너럭바위 틈에 핀 진달래
딱 그만하다
새마을운동 덕분에 초가집 대신
빨간 양철 지붕 씌운 고향 느티나무 집 새색시
딱 그만하다
조신한 조선 말씨에 살가워지는 정겨움
낮선 중국 선양 땅에서 만나도
서로에 물을 것도 없이
딱 그만하다
더도 덜도 없이 딱 그만하다

▲ 정 재 영 장로
시인의 배경을 살펴보면 내용이나 의미를 잘 알게 된다. 신비평 전까지 대부분 전기적, 역사적 비평이었던 사실을 보면 그만큼 시인의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외교관인 부군을 따라 수십 년을 외국 현지에서 살았음에 틀림없다. 그런 사실을 미루어 읽어보면 이 작품의 성격을 잘 알게 된다.  

 겉으론 기행시다. 그러나 장소가 아닌 인간 중심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

 평양관 아가씨는 이북 사람이고, 화자는 이남 사람이다. 즉 그런 성분의 두 사람이 이남이나 이북도 아닌 중국에 있는 냉면집에서 손님과 복무원으로 조우한 장면을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소속된 이념과 관계없는 장소에서의 관찰이다.

 내용은 중국에서 본 이북 아가씨도 남한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평양관 아가씨를 ‘무악재 뒷산 너럭바위’에 있는 진달래로 비유하는 것이나, 화자가 고향에서 보았던 빨간 양철지붕의 새색시로 비유한 것이 그것을 말한다.
 이북 아가씨의 조신한 말씨를 가진 모습을 길옆이 아닌 적당히 거리를 둔 뒷산에서 조신하게 있는 진달래 모습이나 고향에서 본 새색시의 조신한 모습으로 의도적으로 이중으로 겹쳐 그림처럼 그려주고 있다. 이것을 형상화 작업이라 한다.   

 특히 무악재라는 장소는 참 적절한 의미를 주는 이미지 제시다. 무악재는 남북을 오가가는 길로, 남한에서 보면 시작이요, 북한에서 보면 도착하는 길 끝에 있는 장소다. 

 작품 안에 ‘딱 그만하다’를 4 번씩이나 사용한다. 마지막 행에서 그 말을 결론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비유로 제시한 이미지와 너무 똑같다는 강조법이다. 제 3국인 중국에서 보니, 이북 아가씨가 이남 어느 곳에서 보았던 사람과 똑 같다는 말을 함으로, ‘정겨움’이란 말처럼 장소와 이념을 넘어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직관적 민족론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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