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종교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인격적으로 신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에 메여있다. 종교인이 종교를 내려놓고 세속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면 그가 속한 종교에 대한 모독이요 차라리 자신이 종교인이라는 내색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 2011년 한국의 종교현황에 의하면 개신교 목회자 14만483명에 7만7966개소의 교회건물을 보유하였고, 불교 승려는 4만6905명에 2만6791개소의 사찰건물을 소유하였다. 그리고 천주교 성직자는 1만5918명에 1609개소의 성당건물을 보유했다고 통계를 발표했다.

얼마 전 2012년 불교 조계종이 발행한 “ 불교의 종교적 반성” 이라는 글에 의하면 “ 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다.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 우리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라는 자기 성찰의 표현을 반성문으로 표현하바 있다. 이는 불교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종단 내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 차원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물론 타 종교에서 한 일이니 기독교와는 무관하고 우리들은 아무리 잘못했어도 저 정도는 아니다 라는 조소석인 빈정거림을 할 수 있겠는가? 불교 지도자들이 세속적으로 잘못된 행태로 인해 지탄을 받을 때 바로 진솔한 반성으로 인해 신도들에게 양해가 되었음을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종교단체 가운데 종교인들이 줄어드는 곳은 개신교가 유일하다고 한다. 왜 줄어드는지 그 원인을 찾고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여위고 나른하여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병원을 찾은 환자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아 시한부 생명을 사는 것과 같을까 걱정이다. 한국교회는 자각 증상이 없는 교인들의 줄어드는 현상을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살아 있으나 시한부 생명으로 급기야 한국교회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먼저 지도자들이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중세의 수도사들처럼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신앙의 제자리에 서야한다. 지금은 모두들 한국교회위기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목회자가 제 자리에 서서 묵묵히 교회를 이끌면 거룩함이 회복되고 메시지의 생명력이 살아나 신도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주게 된다. 지도자들의 주된 자리는 기도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리다. 그리고 사랑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자리다. 지도자가 목회 자리를 떠나 정치와 부흥회, 연합활동, 행사에 바쁘게 나돌고 제 자리에 없으면 교회는 빈 공간만 덩그렁 있는 비효율적 장소에 불과하다.

지도자들은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바른 목표를 세워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교회의 목표는 거창한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 교회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목표는 세우되 진실로 교회가 이 땅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거룩함과 청빈함과 신실함을 드러내야 한다. 물론 보이는데서만 아니라 평소에 절제된 삶의 모습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스스로 낮아졌으면 한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지 않게 해야 하며, 성도들이 교역자를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의 본 성과 제자리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자기를 비운 자의 자리이며, 십자가는 자기희생의 자리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남의 죄를 내가 대신 뒤집어쓴다는 의미가 제일 크다. 기독교는 바로 이러한 십자가를 지는 자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약한 자, 가난한 자, 세상에 대해 비관하여 생명을 버릴 생각을 가진 자들이 최후로 찾아오는 곳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나라의 정치에 휩싸여 여와 야로, 사상에 병들어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로 갈라져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가진 교회와 못 가진 교회가 서로 함께 살아 갈 수 있어야 하고, 중대형 교회와 개척도상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말이다.

종탑의 꼭대기에 이정표로 세운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 돈 있고 신분 높은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매도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교회라는 곳은 세상과는 구별된 곳으로 지금까지 생각하여 왔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도 세상의 기업이나 다름없는 종교기업군으로 전락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 교회주변에 사는 누군가 돌보아야 할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소통의 장소가 되기를 소망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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