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깨우는
아름다운 천사의 노래가
바위 같은 어둠을 열고

새 날을 여는 울림에
잠든 대지가 기지개 펴면서
영롱한 아침 이슬에 젖는다

지친 영혼을 감싸주는
사랑의 종소리가
멀리 울리고 있다

사회가 병들어 가나
아침을 밝히던 천사의 노래가
오늘도 가슴에 울린다

▲ 정 재 영 장로
 기독교 시 즉 종교를 다루는 작품은 가급적 상징어로 읽어야 한다.

내용은 간단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엉뚱한 숨겨진 뜻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가지고 파악해야 시인의 의도를 놓치지 않는다. 내용이 간단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원래 의도하는 뜻을 원관념이라고 하고, 비유나 상징으로 나타낸 말을 보조관념이라 한다. 이미지즘에서는 원관념의 분명한 제시를 위해 보조관념이 간단명료해야 한다. 이미지즘 이론 중에 그런 것을 견고성이라 한다.

 우선 제목인 새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시간인지 아니면 시대를 의미하는 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마지막 연의 ‘사회’라는 시어를 보아 새벽은 한 시대의 특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해준다. 곧 어둔 사회풍조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첫연의 새벽은 ‘바위 같은 어둠’을 여는 시간이다. ‘바위’같다 함은 도저히 변하지 않을 같고, 꼼짝하지 않는, 바위의 무거운 모습으로 그 어둠의 성격을 말한다. 어둠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데도 빛이 스며드는 새벽이 온다는 것이다. 

 2연에서 바위를 움직이는 새벽의 열림은 천사의 힘에 의해서다. 인간의 힘이 아닌, 신의 대리인 천사가 열어주는 시간, 즉 신이 주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새 날은 천사의 울림으로 열리고, 대지는 이슬이라는 응답에 의해 피동적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일어난다. 이것은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반응이다. 

 3연의 ‘지친 영혼’은 인간만이 아닌,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상징한다. 인간의 타락으로 만물이 괴로움을 당하는 현상이다. ‘멀리’라는 말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의식이다.
 

마지막 연에서 새벽은 사회의 어둠을 깨는 시간, 죄로 말미암은 어둠이 물러가는 시간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어둠은 신이 주시는 빛에 의해서 회복이 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확장한다면, 새벽 종소리는 하나님 말씀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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