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호관 목사
한국교회는 지금 이단 앓이에 깊이 빠져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단이라는 시퍼런 칼 날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몸조심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단을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하여 글자의 자모를 따지는 냉철한 분석전문인도 있다.

그런가하면 오랜 이단을 풀어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면죄부를 주는 편이 있는가하면 그 면죄부는 잘 못된 것이라며 개혁과 척결을 부르짖는 판관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단인가? 어떤 사람이 이단인가? 그 기준은 성경말씀 뿐이다. 성경이 이단이라면 그는 진짜이단이다. 그러나 성경이 이단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누구이든 누가 이단의 굴레를 씌웠든 그는 가짜이단, 만들어진 이단이다.

성경을 기준으로 이단(異端)과 정단(正端)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임을 믿으며,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확실하게 믿는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는 정단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그 몸으로 다시 오시는 재림 예수를 는다면 그는 이단이 아니다.

가짜이단도 있다. 이단 아닌 이단도 있다는 말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죽을 일을 하지 않았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될 가짜이단이었다. 주장하는 논(論)이 다르다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지동설이라니 말이 안 된다. 그러니 그를 죽여야 했다. 천동설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을 지라도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다.’고 독백을 했다는 갈릴레오의 그 말이 오히려 옳았다. 그래서 아주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지만 그를 죽인 그 일은 잘 못되었다고 교황정은 사과했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가짜 이단이었다는 말이다.

중세기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의 논은 교황청의 논과는 아주 달랐다. 그래서 루터를 죽이려 했고, 칼빈을 잡으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재세례파라 하여 많은 사람을 무고히 죽음으로 내 몰았던 그는 100% 다 옳았는가? 누가 옳았는가? 지금도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인을 빼앗고, 빼앗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이단으로 내 몬다면 이 땅에 이단 아닌 자가 누구인가? 자기의 목장 안에 빼앗은 양은 아니라도 남의 우리에서 가만히 옮겨온 양을 모르는 척 가두어 두고 있다면 그 역시 이단이 아닌가?

이단 척결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퇴계원의 한 인사는 지금 거대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정죄를 받고 심히 아파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기구라는 그 곳에서는 오랜 이단 다락방 사상은 이단이 아니라고 면죄부를 주었다. 누가 옳은가? 적진 앞에서 이전투구는 그만 두자. 교회를 통째로 접수하기 위하여 혈안이 된 진짜 이단들이 삼킬 교회를 두루 찾고 있지 않은가?

예장 개혁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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