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음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여러 아내를 거느린 탓에, 각기 다른 배에서 태어난 자식들 간의 불화로 비극적인 일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맏아들 암논과 배다른 형제 압살롬이다. 암논이 배다른 누이동생 다말을 겁탈하고, 내치는 패륜을 저지르자 압살롬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암논을 살해한다(삼하 13:1~39).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다윗은 원통한 일을 당한 딸 다말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식의 죄를 심판하지 않은 다윗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만다. 압살롬은 백성들에게서 아버지 다윗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도적질’(삼하 15:6)하고, 마침내 아버지를 대향해 반역을 도모하다 척살당하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이다.

복음서가 예수의 메시아 이미지에서 다윗의 색채를 거둬내려고 했던 것은 이런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말할 것 없고, 제자들까지 예수에게서 다윗의 이미지를 지닌 메시아를 기대했을 때, 예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다(막 9:33).

예수께서는 욕망이 춤추는 세계가 아닌 창조의 동질성을 지닌 존재로서 서로를 섬기는 세계를 바라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이 역사하는 현장에는 항상 연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이방인들, 여자들, 어린아이들과 같은 소외된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여성이나 남성을 가릴 것 없이 그들이 지닌 성적인 특성을 돈벌이를 위한 소비재로 삼고 있다. 이 또한 저 옛날 유대인들이 아내를 쓰다 버릴 도구로 여긴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교회는 비인간적인 세속의 물질문명에 대해 엄중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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