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전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21-23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맺은 계약법전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헌법이며, 그 이후 모든 헌법의 모법이 되고 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꾸러 와서 겉옷을 담보로 잡혔을 때는, 해가 질 때까지 품팔이해서 갚지 못하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라”, “아이고 춥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울부짖으면 반드시 나는 그 소리를 듣고 피의 보복을 너에게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가 지면 덮을 거라곤 그거 하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추운 밤을 지내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떠돌이, 고아, 과부, 병약자, 용병에 대한 염려와 그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피의 복수를 하겠다고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계약법전의 전거는 “너희들도 과거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일을 생각하라”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너희들 자신이 노예인 주제에 노예를 차별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히브리’는 일정한 국적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또 혈연집단, 문화공동체, 한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공동체도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흘러들어온 떠돌이들을 일컫는다. 서남동교수의 말에 의하면, 노예, 농노, 떠돌이, 용병, 공사장의 일꾼들, 가정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아이들, 이들을 히브리라고 규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민들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울한 천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앞길을 인도하는 야훼 하나님이다. 어느 사회이든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 약자들만의 하나님이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시는 신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된 사람들의 신은 아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서의 중심에는 늘 사회적 약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신약시대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주변에 과부, 고아, 신체불구자, 농민, 유랑민, 정신뵹자, 어부 등 사회의 모순된 구조나, 항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들이 주체가 되었으며, 이들은 새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이었다.

새역사는 역사의 주체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면서, 새역사를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역사의 주체가 바로 이들이며, 이들만이 새 역사를 쓸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부자와 지배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모순된 구조에서 고난당하며,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굶주린 사람, 가정폭력과 사회폭력에 시달리는 이웃들의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성서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에서 “네가, 내가 병들었을 때 찾아온 일이 있느냐, 내가 옥에 갇혔을 때 찾아온 일이 있느냐, 내가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천박하고, 미개한 백성들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하나님은 한국에 와서 부자들을 눈물을 닦아주는 하나님으로 변해버렸다. 그 결과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고난 받는 이웃을 외면했고, 가난한 이웃을 멀리했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당한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다. 오히려 이들의 처절한 아우성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제국주의, 아니 제1세계의 선교를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개신교가 고난 받는 사람들의 아픔과 역사성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개신교가 이 땅의 사회적 약자인 농업농민과 어민, 이민 노동자,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희생자가족,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 여러 사고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가족 등, 새로운 세상의 주체이며, 새 역사의 주역인 이들을 외면하는 한,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급급하고 있는 한, 한국교회에 소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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