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다시 출애굽기 3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모세에게 알려 주신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자 하되,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조상들과 관계를 맺어 오셨음을 설명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한다. 여러 번 성경에 등장하는 표현방법이다. 출 6:7, 렘 7:23, 11:4 등.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신다.

출애굽기 2:24-25절에서도 하나님은 스스로 언약의 하나님,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으로 규정한다. 그 민족과의 관련성을 말하고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곧 그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소유하신 백성이라는 관련성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벧전 2:9). 이집트에서 고난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으로 드러내신다. 고난당하는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하나님의 언급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모든 언약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최고의 중요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는 어떻게 움직이시는가를 알려주신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출애굽기 3장 8절에서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내려가서”라는 구절이다. 히브리어를 발음으로 옮기면, “야라드” (Yalad, 영어로 번역하면 뜻은 다소 명확해 진다; descend, come down, go down)인데, 낮아지심의 원리를 확실하게 깨우치게 된다. 모세는 “야라드”를 이해하고 난 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확신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우리를 찾아서 내려오신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God with us)는 뜻이다. 낮은 자리로 찾아오시는 것이 바로 언약의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세에게 보여주신 “야라드 원리” (yarad principle), 곧 낮은 자리로 찾아서 오시는 하나님의 행동원리는 구원의 역사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자발적으로 내려오는 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도 우리 수준으로 낮춰주신 방법 중에 하나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려 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오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초대 교부시대부터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는 용어로 “accommodation” (수용가능하게 낮춰주심)이라고 풀이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계시하신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인간의 삶에서 쉽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며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손이나 발이라는 표현, 또한 머리가 되셔서 몸을 지도하신다는 표현 등에서도 역시 사람에게 친숙하게 깨닫도록 하셨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명령하고 호령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속성과 본성에 따라서 사람의 이해 수준으로 낮춰주셨다. 마치 박사학위를 가진 분이 유치원 아이에게 찾아와서 설명하는 것처럼 낮추신다.

“야라드 원리”는 창세기 3장 8절에서도 발견된다. 서늘한 날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만나고자 내려오셔서 걷는다고 표현되어진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죄한 인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낮아지심이 담겨있다.

창세기 22장 11절에서도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불러내는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실상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을 보고 계시면서, 먼저 사태를 종결짓고자 찾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출하시고자 함이다 (시 34:7).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처럼 옛 언약에 담긴 “야라드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 성경의 원리를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해해야만 한다. “야라드 원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 피조물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맺으시는가를 보여주신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야라드의 원리”를 보여주셨다.

이것은 장차 새로운 출애굽을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였다. 임마누엘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죄의 굴레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먼저 낮고 천한 자리에 내려오신 것이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상호 소통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 고난당하는 백성들의 상태를 다 파악하고 있으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주신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모세가 해야 할 임무를 알게 하셨다.

모세가 구원자의 임무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앞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 확증을 주셨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한다. 모세를 파송하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이 구분이 하나님의 자존성을 나타내는 구절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세계에 속한 분이 아니요, 자연만물에서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독립성”과 유일성을 드러낸다. 떨기나무 자체는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하나님의 임재선포의 형식으로 불로 표현한 것이다.

5. 위로부터 나온 지혜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부패하고 정욕적이며 교활한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위로부터 온 지혜이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낮추셔서 사람의 수준으로 열어 보이시는 계시를 통해서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것들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보여주셨으니, 첫째는 자연만물이요 둘째는 사람의 양심이며 셋째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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