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진 것이
바라는 것보다
어쩌면

부족한 듯한데

내일을 갈망하는
삶의 터전에
정제된 귀한 것으로만
채우려 하는 것이기에

삶이란
대지의 사계四季처럼
엄숙하고도
찬란한 것

▲ 정 재 영 장로
3 연을 가진 자유시는 보편적으로 시조와 같은 구성을 가진다. 논리의 전개상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는 기승전결의 구성을 2행과 3행 사이에서 생략하는 부분이 있다.

예시도 2행과 3행 사이에 생략한 반전의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기승의 단계를 건너 뛰어 3연으로 결론을 지어낸다.

화자는 삶의 속성을 항상 부족한 것으로 인지한다. 그 이유는 가진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제된 귀한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라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그 때마다 가지는 엄숙하고 찬란한 모습이라 한다. 이 말은 삶이란 어느 경우에도 종교적 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 함이다.

계절이 바뀌면 항상 그 계절에 맞는 것이 필요하다. 여름의 부채는 가을만 되어도 필요하지 않는 물건으로, 옛 분들이 그런 것을 비유하여 추선(秋扇)이라 하지 않았던가. 봄은 꽃의 계절이고, 여름은 성숙시키는 절기고, 가을은 결실을 보이며, 겨울은 지나온 자기의 세월로 스스로 안식을 만끽하는 특징을 함축하고 있다. 즉 삶이란 절기에 따라 각각 고귀함의 가치가 달라지는 변화의 속성을 가진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삶은 항상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족함이 곧 삶의 특성이며, 가치라는 것이다.

‘대지의 사계’라 함도 자연의 이치에서 삶의 고귀함을 발견하는 잠재된 의식을 추론하게 한다. 이 대지란 우주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으로, 대지를 통해 삶의 과정과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이 곧 우주의 본연의 진리를 깨닫는 시적 변용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3행에서 보는 논리의 추월은 삶이라는 철학적 정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부족함이 무엇인지 또는 ‘정제된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종교적 의미인 대지가 말해주는 가치관으로 그 부분을 상상해서 채워 삶의 의미를 그려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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