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을 조심하자

 충청남도 부여군 시골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병들은 어머니와 노총각 아들 단 둘이서 살고 있었다. 어느날 이 마을에 세워진 교회의 목회자부인이 병든 어머니를 생각해서 빵과 과일을 들고 찾아갔다. 병든 어머니의 옆에 있던 노총각 아들이 하는 말, “먹으면 X이라 쌀 것인데 무엇하러 주느냐”며, 빵과 과일을 내 팽개치며, 목회자부인에게 핀잔 했다.


 이렇게 목회자부인에게 민망하게 하던 아들은, 어느날 논산시장에 갔다가 시장사람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쓰러졌다. 자신을 수발해 줄 사람이 없어 형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루는 이 교회의 목회자와 부인은 병든 어머니에게 했던 대로 빵과 과일을 가지고 찾아갔다. 이 노총각의 형수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교회 권사인 형수가 목회자부부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당연했다.  


 교회로 돌아와 창문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더니, 권사인 형수라는 사람이 ‘먹으면 X이라 쌀 것인데, 무엇하러 주느냐“고, 과거 이 노총각이 어머니께 했던 말 그대로를 내뱉는 것이었다. 이 목회자부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을 넘어 과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그대로 보응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무서운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아뿔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노총각은 논산에서 몰매를 당하던 날도, 이 교회의 목사가 찾아가 집을 교회에 팔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물었다. 이에 이 노총각은 “교회에는 절대로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한마디로 잘랐다. 그리고 그날 논산 5일장에 갖다가 변을 당했다. 그리고 얼마 살지를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노총각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삶의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지극 정성껏 모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또 하나는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마지막 하나는 형제들 간에도 우애를 쌓지 못했다. 노총각은 이러한 잘못된 행동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말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우리속담과 성경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즘 기독교단체와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복지시설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되어 있다. 수 많은 복지시설에 맡겨진 어르신들 역시, 이 노총각이 어머니들에게 했던 행동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어 성서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사실 병든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겨놓고 한번도 찾아가지를 않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병원에 가야 할 위급상황에서, 병원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자식들이 무지기 수다. 이것은 소수가 아닌 대다수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부모가 요양원에서 요양하다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오늘 한국가정의 자식 모두가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기독교인의 가정이라고 해서 낳은 것도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시설에 맡겨진 부모들은, 대부분 기독교인 가정의 부모들이다. 혹 기독교인들이 부모를 이런 형태로 모시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자식은, 자신도 나이가 들어 똑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자식도, 손자도 먼 훗날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늙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순리이다.


 성서는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소외된 이웃을 돌보라 등등 약자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라고 했다. 유교에서도 부부간의 과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으라고 교훈하고 있다. 그래야만 건강한 사회,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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