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우리에게는 아무리 불러도 지루하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 그 자체가 우리의 생명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사랑이며, 생명이고, 평화이며, 행복이라고 말한다.

전라도 광주에 68살된 장애인 딸을 50년 째 돌보고 있는 101살의 어머니가 있어 화제다. 그가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장애인 딸이 불쌍해서 오래 살아야지. 내가 죽으면 불쌍한 딸이 혼자서 어떻게 살어”에 함축돼 있다.

101살의 박옥랑 할머니의 딸을 향한 사랑은 고난의 행진을 수없이 걸어온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며, 조건 없는 아카페 사랑이다. 자손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도 시원찮은 연세에 몸이 불편한 딸을 돌보느라 고난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13평짜리 작은 공간에 살고 있는 박 할머니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지금부터 7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 할머니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할머니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 업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정을 보며 살아왔다. 여기에다 남편마저 집을 나가버렸다. 할머니는 생계 때문에 딸을 언니네 집에 맡기고 계속 학교에 나갔다. 할머니는 1953년 나주시 영산포 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교직을 그만 둔 뒤 할머니는 딸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할머니도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할머니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흐릿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서로 의지하고 사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고 혼자남아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암담하다. 할머니의 마음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순간, 딸도 함께 생명이 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할머니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정부가 매달 지급하는 얼마 되지 않는 돈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고난의 짐을 내려놓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딸에게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을 생각해서다.

딸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은 나의 어머니이다.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다“며, 어머니의 조건 없는 자신을 향한 사랑에 감사했다. 이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넘고 넘었다. 그것은 가정의 평화와 사랑,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민족의 어머니이며, 역사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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