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와  눌린 자들과 함께 눈물로 역사를 만든 어머니의 역사 몰각
구한말 선교사들의 교육운동과 양성평등운동으로 어머니들의 가치를 인정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역사는 남성에 의해서 씌어졌고, 남성의 기독교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역사의 중심, 민족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못 찾고, 민족의 고난, 가족의 아픔을 항상 짊어지고 고난의 행진을 벌여야 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인의 70%이상이 여성임에도, 교회 안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민족의 희생자로서의 어머니

남성에 의해서 쓰인 역사는 분명 남성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 같은 역사서술은 분명 지배의식이 크게 작용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여성의 역사는 철저하게 은폐될 수밖에 없었다. 또 망각되거나, 삭제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 땅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아주 미미한 존재였으며, 가정과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영미의 여성들은 18세기부터 여성의 위치를 부여받기 시작했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영미선교사들이 들어온 구한말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미선교사들은 “천박하고, 미개한 백성(영미선교사들의 표현)들”에게 양성평등의 사상을 심어주었고,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한국의 여성들은 1915년도 이후부터 자각하기 시작했고, 역사의 현장, 고난의 현장으로 들어와 희생됐다.

여성들은 눌린 자,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피지배자였다. 구한말 민족의 개화, 근대화운동, 민족의 자주독립과 국정개혁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여성의 교육운동의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여성운동과 여성교육은 민족운동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 각성과 여성운동의 각성은 똑같은 민족운동에서 평가되었으며, 민족운동은 1919년 3.1만세운동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항일민족운동과 여성민족운동, 그리고 여성교육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가 필요성을 자각했다. 여성 아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피압박민족으로서, 이름도, 빛도 없이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의 부당함도 깨달았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인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에서 여성민족운동과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밝혔으며, “민족의 자유는 곧 여성의 자유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항일민족운동은 3.1운동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여성은 민족사적 측면에서, 억압당하는 민족의 대표적인 고난 받는 사람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땅의 여성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피압박민족으로서, 삶의 터전을 일인에게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하와이, 멕시코 등으로 남편과 아들을 눈물 흘리며 떠나보냈던 우리백성들의 고난을 아파했던 여성, 아니 고난의 어머니였다. 또한 독립운동에 아들과 남편을 슬퍼했던 어머니의 고난, 노무자 또는 학도병, 정신대로 남편과 아들, 딸들을 떠나보내고, 애통했던 어머니의 고난, 즉 이 땅의 역사적 고난은 어머니들의 고난이었다. 어머니의 고난, 여성의 고난은 ‘민족의 삶’의 밑바닥에서 민족의 역사를 이어갔고, 민족의 삶을 지탱했다. 이 땅의 여성들은 한민족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어머니였다.

▲ 남성중심의 역사기록은 결국 역사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의 존재를 몰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민족의 어머니

지난 한해를 뒤돌아보아도, 어머니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자식을 바다 한가운데 수장시킨 어머니의 눈물, 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나 사늘한 시채로 되돌아온 자식을 봐야하는 어머니의 눈물 등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눈물이며, 슬픔이다. 어머니는 이들이 왜 죽었는지 몰라도, 함께 슬퍼하며, 애통하며, 아픔을 함께 나눌 줄 알고, 슬픔에 잠긴 이웃을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

사실 역사 속 우리의 어머니는 비록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 몰랐어도, 민족 모두가 자유와 평등, 정의를 외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었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민족의 희생자였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민족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초간의 한 모퉁이에서 피압박 민족과 가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은 다름 아닌 민족의 어머니였다. 1903년도부터 1910년까지 일어난 부흥집회와 대부흥운동에서, 한국교회의 어머니들은 민족의 죄와 개인적인 죄를 애통하며, 피압박민족의 구원을 간구했다. 이 간구는 가난한 사람과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세계 지배세력들의 붕괴를 증언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은 지배이데올로기와 제국주의의 상징인 서양기독교의 모델과 상관없이 한국기독교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으켰다는데 한국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역사의 어머니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이,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하는 배교행위의 죄를 저질렀다. 영미의 선교사들 역시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제국에 힘을 실어주며, 자신의 이권을 철저하게 챙겼다. 그러면서 한국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 ‘복음’, ‘기복신앙’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민족의 어머니들은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독립운동가와 학생들이 일경의 눔을 피해 교회로 들어와, 교회의 조직을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3.1만세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교회의 기층민중인 민족의 어머니와 기독농업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3.1만세운동의 중심에 민족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 여성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민족의 어머니’는 한마디로 피압박민족에게 있어 ‘구원의 표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제국의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개신교는 민족과 세계의 문제를 몰각하고, 구원을 증언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개신교는 ‘맘몬’과 ‘탐욕’, 그리고 ‘바벨’을 노래하는 잘못을 범했다. 한마디로 한국개신교는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머니는 구원의 표징

“교회의 맘몬화는 결국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교회를 만들었다”고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변질된 한국교회의 잘못을 지적했다. 사실 한국개신교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한 나머지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가 탐욕에 길들여졌고, 일부 목사는 젊은 교인을 성폭행하는 잘못을 범하는 결과 불러 일으켰다. 또 담임목사의 세습은 대형교회를 넘어 중형교회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이렇게 부자가 된 교회는 슬픔에 잠긴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하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기에 바쁘다. 한국개신교의 이 같은 잘못을 지적하는 영화까지 나왔다.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는, 로마로 건너가 제도가 되고, 유럽으로 건너가 문화가 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기업이 되고, 한국으로 건너와 대기업이 된 기독교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즉 한국개신교가 성서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구원의 표징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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