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기독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믿는다. 한국교회는 교회마다 은행에 깊숙이 예치한 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기를 촉구한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내 교회성도들이 내는 헌금 내 교회 돈이므로 내 교회 마음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갇혀 있다. 네 교회든 내 교회든 교회에 내는 연보는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 신앙고백 해야 하지 않을까? 성도들은 피와 땀을 흘려 번 피 같은 돈을 교회에 낸다. 헌금은 원칙적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의 소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함이 신앙적인 것 누구나 다 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내 교회 우리성도들이 내는 헌금은 내 교회 소유라는 생각이 굳어져 교회는 모인 헌금을 교회 건물 새롭게 짓는데 거의 소진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교회가 해야 할 본래 일은 뒤 전으로 미루기 십상이다. 어느 교회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는 수년씩 교회의 재정을 아끼고 절약해 모은다. 그러다 보니 용도를 정한 은행에서 잠자는 돈을 제외하니 사실 교회는 경상비조차 제대로 지출이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대형 교회 하나 짓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도 못할 천문학적인 수의 돈을 수년에 걸쳐 모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돈을 모아 교회건물을 짓는데 총력을 집중하라고 한 곳이 한 군 데도 없다. 다만 출애굽기에 등장한 하나님의 성막 건설에 필요한 경비는 백성들이 자원하여 내는 건축비로 했다. 이는 출애굽 하기 전 하나님이 백성들의 사백년이 넘는 종살이의 품삯으로 애굽 인들의 귀중품을 가져오게 하여 성막을 짓도록 해 오합지졸 백성들과 광야 사십년을 함께 하셨음을 보여준다. 이 성막은 성전, 신약의 교회로의 단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성막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의미를 부여 한다. 교회마다 대형교회로 발 돋음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원형인 초대교회에서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성도들이 내는 헌금과 헌물을 따로 재정을 관리하는 집사들은 선정해 당시에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에게 나누어 준 기록이 있다. 교회에 내는 헌금의 사용처가 바로 가난한자들의 돌봄을 위해 사용된 기록과 교회 간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어려운 가운데도 십시일반으로 선교 헌금을 보낸 기록을 보게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교회에 내는 헌금은 대부분 구제와 선교의 용도로 쓰여 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초기 교회가 예배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성도들이 낸 헌금을 사용했다는 신약의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교회마다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수년 동안 긴축 재정을 하면서 건축 헌금을 모은다. 물가가 상승하면 수년씩 연장 하면서 교회는 오직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는데 교회의 역량을 집중 한다. 과연 교회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헌금을 모아두는 것이 성경의 계시에 맞는 행위인가? 한국교회는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미 멈춘 지 오래인데, 성장이 안 되는 원인 중에 하나는 헌금을 긴축해서 새 건물 그것도 대형 건물 짓는데 교회 역량을 집중 소비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저성장의 한 이유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 신앙적인 입장과 판단은 교회가 자신들이 애써 헌금한 돈으로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펴 생활이 곤란한 자들을 발굴하여 구제하면 그로인해 대리만족 한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성도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교역자나 중진들의 의견을 모아 타 교회 보다는 내 교회의 건물이 초현대식 이어야 한다는데 생각이 요지부동이다. 개 교회 나름대로 낡은 건물 헐고 교인 수와 재정형편에 맞는 새 건물 짓는다는데 누가 무어라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교회는 사회와 너무 동 떨어진 생각이 구제와 전도를 멈추게 하고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일 년에 한국교회로 유입되는 헌금은 가히 짐작 못할 거금이다. 한국교회는 헌금을 나누어 주는데 너무 인색하다. 이제부터 한국교회는 교회가 하는 일을 보고 교회에 오도록 해야지 첨단 건물을 보고 오도록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매년 교회의 건물은 최첨단으로 쑥쑥 올라가는데 거기에 모여 예배드릴 성도들이 매년 줄어들고 있음이 안타깝다. 이러한 저성장은 교회가 성경에 계시된 신앙은 뒤로하고 우선 세속적인 욕망 채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새 건물 건축에 집중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너무 멀다. 한국교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의 곳간인 통장을 풀어 가난한 자들, 저소득층, 밥을 굶는 노인과 아동들, 굶주림에 허덕이는 제3국의 빈민들을 위해 년 말 쌓아 둔 통장 잔고를 비게 함이 어떤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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