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사이비 구별 앞서 한국교회 스스로 예수의 향기 풍기는 노력 선행되어야
누구보다 낮은자의 자세로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빛과 소금 역할 중요


 
한 때는 세계교회의 모델로 모범이 되었던 한국교회.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소망을 가져다주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회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전락해 버렸다. 말 그대로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는 세속적인 권력과 재물, 인기에 눈이 멀어 본질을 잃어버렸다. 특히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실천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말씀 사역과 성령 사역이라는 양 날개로 균형 잡힌 사역을 감당하면서 한국교회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 김정훈 목사의 고견을 통해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 살펴본다. <편집자주>

◆작금의 한국교회는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이 상처투성이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안티기독교 이상이다. 분열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초기 기독교의 본질은 사라진지 오래다. 저마다 개혁과 갱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외치고 있으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와 같다. 여전히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에 사로잡혀 목회자로서 성도로서의 사명을 잊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냉소적인 반응은 극에 달하고 있으며,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말 그대로 교회가 세상을 걱정했던 시대에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로서 어둠과 혼란에 빠져 방황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먼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한 목회자로서 거듭 송구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지 못한 채 이정표 없이 방황하고 있다. 부흥과 성장의 과도기를 거쳐 어느 순간 정체기를 걷더니 이제는 후퇴기를 맞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몇 십년 후를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처했다. 그 중에서도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의 모습은 산산조각난 유리처럼 봉합하기 힘들어 보인다. 모든 잘못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부흥과 성장에만 몰두해 진심으로 돌아봐야 할 것을 돌보지 못했다. 교회의 크기는 날로 커지는데, 교회를 지키는 교인들의 숫자가 감소하는 것은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혹자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와 각성을 통해 하나됨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 재물과 권력에 눈이 멀어 본분을 망각했던 모습에서 탈피해 진심으로 주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잃어버린 기독교본질을 되찾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매진할 것으로 생각한다. 위험도 마다하고 불길에 들어가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수처럼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이 땅의 어둠과 혼란을 걷어내는 영적 소방수로 거듭날 것을 소망한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안티기독교와 이단사이비들이 교묘하게 침투해 더욱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한국교회를 폄하하고, 진리를 왜곡시킨 채 성도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를 좋은 먹잇감으로 여겨 온 힘을 다해 핍박하고, 그릇된 신앙관으로 선량한 교인들을 꼬드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내부적 소모적인 논쟁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며, 안티기독교와 이단사이비에 대한 대책마련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누구보다 성도들을 사악한 이리들로부터 보호해야할 한국교회가 눈감고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한국교회를 향한 불편한 시각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티기독교와 이단사이비들의 침투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라 생각된다. 한국교회가 안티기독교와 이단사이비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한국교회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잠시 방황하는 순간에 이단사이비들의 침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주도면밀하게 파고드는 전략에 어린 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더 이상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지 말고, 이단사이비들의 그늘에서 성도들을 지키는데 한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단순히 몇몇 이단감별사들의 논리에 편승하는 모습에서 탈피해 한국교회 전체가 활용할 수 있는 이단사이비 대처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연합기관은 연합기관대로, 각 교단 및 단체도 저마다 이단사이비에 대처하는 예방백서를 만들어 성도들이 이단사이비들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더불어 각 교회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이단사이비 백서를 제작해 전국 어디서나 이단사이비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안티기독교와 이단사이비들을 구별하는데 앞서서 한국교회 스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가 회개와 각성을 통해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되찾을 때 이단사이비들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갈수록 심해지는 성격이 강하다. 진보와 보수 양대진영으로 나뉘어 심각한 대립각을 세워 한국교회 부흥과 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한 보수주의 진영과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진보주의 진영이 오늘날에는 헛된 공방으로 한국교회에 그 어떠한 유익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교회 내부적으로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두 진영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생각된다.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온 문제다. 어느 하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발전적인 모습보다 후퇴적인 모습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의 한국교회 안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백해무익한 일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서로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조율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사료된다. 우선 대사회적 문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내세우기 이전에 기독교의 입장에서 타당한지 판단하고,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간단한 예로 부활절연합예배의 부활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상징이었던 부활절 연합예배마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비판의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됨의 상징인 부활절 연합예배마저 연합되지 않는데, 진보와 보수의 연합과 일치운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서로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됨을 먼저 생각한다면 한국교회 안에서 분열과 갈등은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부흥의 열매를 맺었다. 성령의 불길이 전국 방방곡곡을 강타해 찬양의 울림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부흥의 열정이 식어버렸다. 한반도 전체에서 울려 퍼진 기도와 찬양소리도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내·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한국교회 스스로 부흥의 열기를 사그라지게 만들었다. 한국교회를 성공모델로 벤치마킹하려던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의 발걸음도 끊겼다. 삼천리금수강산 뜨겁게 달궈졌던 부흥의 도미노 현상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동시에 문전성시를 이뤘던 전국의 기도원에도 황량한 바람이 불 뿐이다. 한국교회 부흥의 열정이 식어버린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타파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말 그대로 겉은 화려한데 영적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 영적 권위와 열정이 사그라졌기 때문에 사회적 질책도 동반되는 것이다. 물질주의와 무한성장주의에 길들여져 정작 중요한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흥과 성장의 열매는 단순히 교회의 크기와 성도의 숫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과거 유럽교회의 모습을 재탕할 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만 남고, 성도들은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과거 부흥의 열매를 다시 맺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부흥과 성장의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열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회개와 각성의 기도를 통해 진심으로 거듭날 때 한국교회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역할 증대에 대해 말들이 무성하다. 더욱이 종교인과세, 동성애문제, 정부의 국고보조금 종교편향 등 한국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제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먼발치에서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국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에서 표류 중인 종교인과세 문제와 성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자행되고 있는 동성애 법조항, 불교에만 편중되어 있는 정부의 종교문화재 지원금 문제 등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다. 더불어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영향력 증대를 위해 어떤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

-동성애 반대는 인권침해이자 성소수자의 차별이라는 명목 하에 진행되는 ‘동성애 차별금지법의 입법화’ 추진은 절대 불가하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분명히 타락과 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 행위는 인간의 가장 타락한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성경은 동성애를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패역한 행위로 가증하고, 부끄러우며, 불의한 일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적 퇴폐와 쾌락까지 성 소수자의 인권 보호라는 허울로 포장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행위를 결코 용인하고 묵인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정부의 종교편향적 지원도 적극 반대한다. 정부가 나서서 원칙 없이 특정종교를 지원하는 것은 심각한 종교편향을 가져올 수 있다. 분명한 지침에 따른 예산의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잘못된 종교편향이 자칫 종교간 갈등을 부추기고, 사회적 양분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각종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만 중구난방식의 주장을 하지 말고, 한국교회 전체의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나눔과 섬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회의 모범이 되었다. 병원을 설립해 의료선교에 힘썼고, 학교를 세워 배움의 기회를 나눴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선사했다.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는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해야할 시기라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것처럼 이웃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이 용서해야 한다. 이 세상에 크게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조용히 숨은 자리에서 작은 정성을 모아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을 섬길 때이다.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가.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낮은자의 자세로 섬기는 방법뿐이다. 간혹 요즘 교회의 목회자를 보고 높으신 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일이다. 주의 종이라면 누구보다 낮은자의 자세로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섬겨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의 예산편성에 있어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누는 것을 전체 예산의 10%이상을 항상 책정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더불어 단순히 돈을 전달하기보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동반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똑같이 밟아 가야 한다. 특별한 날에만 생색을 내기보다는 연중 어느 때고 소외된 이웃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나눔과 섬김의 본을 보일 때 비로소 이 사회도 나눔과 섬김의 참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복음과 초대교회로 돌아가지(환원) 않고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복음이 변질된 것은 물론,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를 상실해 현대 물질문명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선교초기 가난한 백성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복음을 선포, 미래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하여 교육·의료·사회사업·계몽운동으로 무지한 백성들을 일깨워 주었다. 복음을 통해 소망을 주었다. 한마디로 나눔과 섬김을 통해 사랑의 선교를 실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덧붙여 작금의 한국교회가 되찾아야할 본질이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끝으로 김정훈 목사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리고, 따끔한 충고도 부탁드린다.

-작금의 한국교회가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은 앞서서 장시간 대담을 통해 나왔듯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망각한데서 발생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스스로 회개와 각성을 통한 기독교의 본질을 되찾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낮은자의 모습으로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섬길 때 교회부흥과 성장도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진다. 지금처럼 재물과 권력에 눈이 멀어 인간의 탐욕에 빠져 있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캄캄하다. 또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분열을 자행한다면 이 또한 참담한 미래를 가져올 뿐이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여지는 한국교회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가 스스로에게 잘못을 되묻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015년부터 기독교한국신문 사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게 됐다. 기독교한국신문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기독교한국신문은 이단 및 사이비들과 고리를 끊고, 한국교회의 화해와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기 위해 창간됐다. 그동안 기독교한국신문은 한국교회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정론지로 발전해 왔다. 특히 기독교한국신문은 ‘생명’, ‘정의’, ‘평화’, ‘사랑’이란 사시를 내걸고, 정론지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해왔다. 앞으로도 기독교한국신문이 시류에 편승되지 않고, 하나님의 향기를 퍼트리는 언론사로서 정론직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 무엇보다 기독교 언론으로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론지로서 면모를 갖추도록 함께 노력하겠다.

대담 유달상 발행인 겸 편집국장
정리 유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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