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 오셨을 때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것이 합당한 자세인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계획에 있어서 주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생활을 하는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면서도 이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실질적으로 계획을 세우거나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이 교만한 삶이듯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거부하는 것도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는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4장 15절에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이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도, 저것도 하겠다는 자세가 바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하며,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그 삶은 무익한 삶이요 절망의 삶이듯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과정이 빠진다면 허탄과 방탕으로 치닫는 무의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너 보기를 원함은  네 눈물을 생각하여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편지하였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외식적이거나 겉치레가 아니라 또 율법적으로 매여 있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복음으로 충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짓 없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를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롬1;16, 고전1:18). 그리고 이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핍박과 투옥을 당했지만 오히려 이를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복음을 지키고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복음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신 목적을 위해 주시기로 작정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조건 없이 죄인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받았으니 얼마나 놀랍고 귀한 일인데 복음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고 복음 전파의 길이 어렵고 험하다 해도 낙심치 말고 성령님께 의지하여 땅 끝까지 영혼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일을 할 때나,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주님께 뜻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 물어보며 진리의 말씀 안에서 교훈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주은혜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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