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로마의 핍박은 A.D. 64년 네로 황제 때에 시작되어 디오클레시안(Diocletian) 황제의 치세 후 곧 A.D. 320년쯤까지 계속 되었다. 이 박해 시대에는 이름만 그리스도인들을 숙청하며 단련시키는 기간이었다. 이 박해시대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죽은 사람도 많았다. 그와 반면에 박해시대에는 신앙을 저버렸다가 박해가 그치면 곧 교회로 돌아와서 실권을 회복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로 인하여 교회에는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 되었다.

교부들은 교회를 순결하게 보존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런 변절했던 교인들이 다시 교회로 들어오면 교회가 약하고 불순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50여년동안 박해를 당하는 중에도 교회는 로마 전국을 통하여 각처에서 계속하여 자라났다. 계급이나 연령을 불문하고 주님을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생명을 바치기로 결심하여 순교당한 사람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심한 핍박이라도 그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저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압제와 핍박과 또는 순교의 불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성을 더욱 앙양시켰던 것이다. 이 박해로 인하여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육적 생명을 빼앗기기는 하였지만 이들의 위대함과 고상함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박해시대는 비록 비극적이며 시련과 아픔의 시기였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이교의 세계까지 비상한 세력으로 전파되게 하는 데는 오히려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출처 인물중심의 교회사)

그러나 박해시대의 교회사에 비하여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너무 안일과 방종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필자는 물론 모든 교계 지도자들의 외침이 가르침이나 설교 등으로 토해지고 있지만 과연 믿음의 순결성에서 나오는 것인지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너무도 인색함으로, 소금되고 빛 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 되기 때문이다.

물론 개신교가 핍박을 받아야 정신이 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신앙의 정절을 지킴에 안주하기보다는, 복음전도에 장애가 없고 평안하다고 할 때 일수록 더욱 경건의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함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미스러운 소식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심한 좌절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작금에도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사회일각에서도 범죄시 여기는 사건의 보도가 온 매체를 통하여 전파됨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부인 할 수 없다. 그것은 교계 분만 아니라 사회일각에서도 알만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God is watching us)하는 마음으로 과도한 욕심은 내려놓아도 되련마는 그리되지 못함이 우리 인간들의 본성 때문으로 넘겨 버리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큰 것이다. 따라서 거듭났다고 한다면 최소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