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록한 미세 허리
어인 힘 대단하여

진종일 짐 나르고
지겹도록 까딱없나
땅굴 속 들여다보면
화수분*도 있겠다

햇볕에 태운 피부
성실의 상징인가

조상 대대 바짝 구어
흑진주로 변했구나
한사코 미치는 열정
정말 바보 아니가

작은 것 큰 것 없이
챙겨 갖는 당찬 의무

곁꾼 아무도 없어도
발싸심 혼자 부려

기어이 끝 보고 마는
네가 진정 왕이다

▲ 정 재 영 장로
개미의 형태와 습성을 시로 표현했다. 개미 이야기지만 개미와 같은 인간의 어떤 모습을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이 작품 안에는 화자의 정서가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왕’의 정의를 통해 인간이 그런 성품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자아에 대한 독백일 수도 있으나 시를 읽는 독자들 모두에게 해당한 가치관의 설득이다.

우선 양극화의 이미지의 연속을 발견하게 된다. 1연의 가는 허리와 장사의 힘을 가진 비교, 2연에서 하루 종일 노동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힘, 3~4연의 유전자적인 노동의 성실로 얻는 결과 탕진되지 않는 화수분을 가지는 것과 진주가 된 축복, 5~6연에서 광적인 열정으로, 맡은 일이 크던 작던 최선을 다하는 모습, 7~8연에서는 앞의 일이 당연한 의무라고 여긴 결과, 완벽함을 완성하여 최고봉이 된, 왕과 같은 위치의 존재라는 것이다.

햇볕 아래에서 진종일 노동만 하는 성실한 일꾼인 개미가 결론적으로 왕이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어떤 가치를 인정하려는 의도다. 여기서 어떤 가치라 함은, 5연에 나오는 열정이다. 남이 보면 바보 같다. 그러나 그 바보가 왕이 되었다는 것은 오직 열정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연약한 바보가 강한 왕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 열정을 가지면 위치의 변화를 자져온다. 열정에 의해서 화수분도 가지게 되고, 본인도 귀한 진주 같은 존재가 될 뿐 아니라, 왕과 같은 사회적 위치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런 객관적 평가를 받게 된다는 개미로 비유함은 신앙 속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 함이다.

인간을 개미로 비유한다는 것은 논리상 인간을 곤충으로 만든 것이지만, 인간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개미 관찰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자 함이다. 이것을 변용이라 한다. 즉 얼굴 바꾸기라는 말이다.

이런 면은 형이상시학파의 발전적 현대 이론인 융합시학의 특성 중 하나인 양극화로, 역설 내지 아이러니가 된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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