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에 앉아

박필경

달뜬 석양이 호수에 빠져
신열을 식힌다
천지에 봄빛만 가득한데
물가에 혼자 앉아
잔물결로 가슴 적셔보는
호젓한 시간

지느러미 팔딱이며
살아온 세월과 달려온 연륜으로 감아온
그리움의 많은 세월
물비늘에 담아
환상의 꽃꽂이를 한다

일장춘몽인 삶에 연연하여
마음의 고통을 주고
마음의 고통을 받고
노을위에 핀 삶의 꽃작품 하나
석양의 물든 호수에
긴 낚싯줄 던져
당기며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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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장로, 시인, 문학평론가)

시의 생명 중 하나는 상상이다. 요즘은 상상의 경계선을 깨뜨려 환상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 그것은 창작하는 시인의 능력이면서, 동시에 작품을 독해해내는 독자의 심미안에 따라 이해의 수준은 달라진다.

이 작품의 시점은 노을과 연륜과 긴 낚싯줄의 시어가 보여주는 의미인 석양처럼 노년 시기임을 알게 한다. 이것은 호수라는 언어는 단순한 물을 담은 지역을 뜻하지 않고, 시인의 마음속임을 추론케 하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1연의 ‘호젓한 시간’이란 말도 삶을 반추해보는 명상의 시간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 시간은 신열을 식히는 것처럼 본연의 자세로 침잠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잔물결로 가슴을 적셔보는’ 행위는 호수의 이미지와 동일시하는 꾸밈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통한 깨달음을 가지려는 태도다.

‘지느러미 팔딱이며’는 열심히 살아온 인생역정을 비유함이다. 이런 지속적인 행위는 인생을 ‘꽃꽂이’라는 예술행위로 그려냄으로 시인의 진지한 인생관을 엿보게 한다. 꾸준하게 지속해온 치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앞 연의 신열의 원인을 찾게 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 연에서 고통을 주고받는 상관관계의 인생론을 통해 석양의 호수는 꽃꽂이 작품으로 변환한다. ‘긴 낚싯줄’로 비유한 시인의 깊은 사색과 노력을 그려냄은 새로운 의식을 보여주려 함이다. 노년이 가지는 연약함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통한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진지한 모습을 시각화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수사학적으로 탁월한 미학성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 기법이란 상상과 환상의 복합적인 차용이다. ‘호수에 빠져/ 신열을 식힌다’는 표현이나, ‘물비늘에 담아/ 환상의 꽃꽂이를 한다’거나 ‘꽃작품 하나/ 석양의 물든 호수에/ 긴 낚싯줄 던져/ 당기며 끌고 간다‘는 구절은 상상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부분이 시인이 이미 중요한 기법을 알고 만들고 있음에서 작품에 대한 신뢰가 간다. 환상은 종교를 다룬 작품에서 즐겨 보여주는 기법이다. 또한 현대시의 실험시에서 추구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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