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중심은 바로 어머니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한국선교 1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3.1만세운동 제96주년을 맞는 해이다. 3.1절을 맞아 교회, 단체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고, 분단극복을 위한 특별한 기념행사를 갖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또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3.1만세운동을 분단극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3.1만세운동의 주체이자, 고난의 역사 현장의 중심에서 묵묵히 민족해방과 분단극복, 민주화운동과 경제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우리 내 역사의 주체인 이 땅의 어머니들은 오히려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넘은 이 땅의 어머니들은 독립운동과 분단극복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선교 13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땅의 가난하고, 천박한 백성을 깨우치는데 중심에 있었다. 96주년을 맞은 3.1절에 이 땅의 어머니들을 다시 생각하고, 역사적 재평가를 각성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의 사가들과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역사의 주체인 이 땅의 어머니들을 하찮게 생각하며, 역사의 기록에서 제외시키는 잘못을 범했다.

그것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 남성에 의해서 씌어졌고, 남성 중심의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한 교인의 70%이상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교회운영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것도 한몫을 했다. 그것도 양성평등과 공의를 부르짖으며,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주장해온 한국교회가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역사의 중심, 민족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민족의 고난, 가족의 아픔을 항상 짊어지고 고난의 행진을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힘겹게 아리랑고개를 넘었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교인이 여성임에도, 교회 안에서 이 땅의 어머니들은 미미한 존재로 역사적 사건 기록의 뒤에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한국개신교도 봉건주의적 사상이 그대로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교회사의 주체이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어머니들은 1919년 3월1일 무명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 치마 휘날리며, 목이 터지도록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사실 한국개신교의 여성들은 민족의 어머니로서, 민족해방과 분단극복의 중심에서, 새벽마다 눈물로 대한독립과 민족통일, 그리고 교회성장을 위해서 기도했다. 즉 교회성장과 민족통일, 그리고 독립운동의 중심에 어머니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들의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를 못하고, 희생만을 강요당해 왔다. 지금도 정신대로 끌려간 젊은 여성들의 한은, 이들이 백발이 성성해지도록 해결되지를 않고 있다. 이들이 절규하는 한의 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 3.1만세운동의 중심에는 흰옷고름 입에 물고 무명치마 휘날리며 독립운동을 벌인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어머니 심성, 나라 독립과 통일 염원하는 마음 그대로 담겨
 
한의 어머니들은 민족사적으로 고난 받은 사람들의 표징
어머니의 기도는 독립운동 원동력, 지배세력의 붕괴 증언

고난의 십자가를 진 어머니
 
<1면으로 계속>이렇게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넘은 어머니들은 빛도, 이름도 없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에 와서야 몇몇 여성신학자들에 의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어머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난의 십자가를 진 어머니들이 역사의 뒷전에 밀려난 역사서술은 분명 지배의식과 봉건주의 사상이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서 여성의 역사는 철저하게 은폐될 수밖에 없었다. 또 망각되거나, 삭제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남성에 비해 아주 하찮은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가정과 민족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어 독립운동과 분단극복의 주체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진 고난의 십자가는 희생과 조건 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그것은 또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래를 힘겹게 넘은 어머니들의 표징이기도 하다. 어머니들의 이 같은 심성은, 곧 한민족의 심성이다. 이 심성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지배의식과 봉건주의 사상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넘은 이 땅의 어머니들은, 희생과 사랑의 심성조차도 인정받지 못한 채, 눈물과 한숨으로 아리랑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이런 어머니들이 3.1만세운동의 주체였다는 사실이다. 또 아들과 딸을 징용 또는 정신대로 보내고,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오늘 3.1만세운동의 주체라고 스스로 떠들던 이 땅의 지도자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 땅의 어머니들은 마지막까지 절개를 지키며, 대한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럼에도 이 땅의 어머니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를 못했다. 인정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행인 것은 영미선교사들이 들어온 구한말부터 이 땅의 어머니들도 여성의 위치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당시 영미선교사들은 “천박하고, 미개한 백성(영미선교사들의 표현)들”에게 양성평등의 사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도 주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도 가르쳤다.

당시 봉건주의와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혁명이었다.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여성들은 1915년도 이후부터 자각하기 시작했고, 역사의 현장, 고난의 현장으로 들어와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3.1만세운동이 여성들에 의해서 주도될 수 있었던 것도, 깨어난 민족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배자의 종말을 예언

 선교초기 여성들은 눌린 자,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피지배자였으며, 아픔과 슬픔, 그리고 한을 가슴에 품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구한말 민족의 개화, 근대화운동, 민족의 자주독립과 국정개혁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여성의 교육운동의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여성운동과 여성교육은 민족운동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 각성과 여성운동의 각성은 똑같은 민족운동으로 평가되었으며, 어머니들의 민족운동은 1919년 3.1만세운동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한마디로 기독여성들은 전국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주체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동맹휴학에 들어간 학교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열사였다. 3.1만세운동의 주체로 평가를 받고 있는 33인은, 만세운동의 현장에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흰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 치마 휘날리던 어머니들과 농업농민, 부랑인이 있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항일민족운동과 여성 민족운동, 그리고 여성교육운동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성 아니 이 땅의 어머니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피압박민족으로서, 이름도, 빛도 없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의 부당함도 깨달았다. 박순경 박사가 자신의 저서인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에서 여성 민족운동과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밝혔으며, “민족의 자유는 곧 여성의 자유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항일민족운동은 3.1운동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여성은 민족사적 측면에서, 억압당하는 민족의 대표적인 고난 받는 사람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삶의 터전을 일인에게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하와이, 멕시코 등으로 남편과 아들을 눈물로 떠나보냈던 고난의 어머니였다. 또한 독립운동에 아들과 남편을 보내고 슬퍼했던 고난의 어머니, 노무자 또는 학도병, 정신대로 남편과 아들, 딸들을 떠나보내고, 애통했던 고난의 어머니, 즉 이 땅의 역사적 고난은 어머니들의 고난이었다. 그리고 눈물과 슬픔으로 세월 보낸 한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고난, 여성의 고난은 ‘민족의 삶’ 밑바닥에서 민족의 역사를 이어갔고, 민족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이 땅의 여성들은 한민족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어머니였다. 민족의 어머니들은 슬픔과 한숨을 쉬며, 골고다의 언덕, 아니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올랐다. 그리고 민족에게 해방과 통일을 대한 희망을 주었다. 또 가정의 평화와 교회성장의 중심에서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역사의 어머니는 한의 표징

오늘도 어머니들의 고난의 십자가 행진은 미완의 것으로, 역사 중심에서 어머니들의 눈가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세월호 참사로 어린자식을 바다 한가운데 수장시킨 어머니의 눈물, 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나 사늘한 시채로 되돌아온 자식을 봐야하는 어머니의 눈물 등등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눈물이며, 슬픔이다.

어머니들은 이들이 왜 죽었는지 몰라도, 함께 슬퍼하며, 애통하며, 아픔을 함께 나눌 줄 알았고, 슬픔에 잠긴 이웃을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할 줄 알았다. 이렇게 이 땅의 어머니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숨과 걱정 속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이 땅의 생명을 이어 왔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위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의 주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머니들의 기도는 가난한 사람과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했고, 세계 지배세력들의 붕괴를 증언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역사 속 우리의 어머니는 비록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 몰랐어도, 민족 모두가 자유와 평등, 정의를 외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었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민족의 희생자였으며, 희망이었다. 사실 어머니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민족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초간의 한 모퉁이에서 피압박 민족과 가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리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은 지배이데올로기와 제국주의의 상징인 서양기독교의 모델과 상관없이 기독여성과 한의 표징인 어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일으켰다는데 한국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역사의 어머니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애통하며 기도하는 사이,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하는 배교행위의 범죄를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다. 그리고 민족을 배반하는 범죄도 저질렀다. 이들 교회지도자들이 해방이후에도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는데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영미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제국에 힘을 실어주며, 식민지를 정당화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과 자국의 이권을 철저하게 챙겼다. 그러면서 한국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 ‘복음’, ‘기복신앙’, ‘축복주의’을 강조하며, 한민족 앞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부끄러운 역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은 오늘까지 회개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를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어머니들은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 또한 한국개신교의 잘못을 회개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독립운동가와 학생들이 일경의 눈을 피해 교회로 들어와, 교회의 조직을 이용해서 벌인 독립운동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 3.1만세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교회의 기층민중인 고난의 십자가를 진 어머니와 기독농업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3.1만세운동의 중심에 민족의 어머니, 역사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 여성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며, 한국개신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민족의 어머니’는 한마디로 피압박민족에게 있어 ‘구원의 표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제국의 기독교, 식민지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개신교는 민족과 세계의 문제를 몰각하고, 민족의 구원을 증언하지 못했다. 오히려 영미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개신교는 ‘맘몬’과 ‘탐욕’, 그리고 ‘바벨’을 노래하는 잘못을 범했다.

독립운동가의 최고 후원자

한마디로 한국개신교는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개신교가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한의 어머니’들의 눈물을 닦아 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이로 인해 한국개신교는 국민들로부터 멀어졌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다.?한의 어머니는 구원의 표징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는, 민족구원의 표징이며, 한의 상징이다. 이런 어머니의 역사와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하는 한국개신교의 앞날을 결과적으로 희망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맘몬과 바벨은 결국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강단에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감추고, 천박한 목소리를 계속해서 외치는 한, 교회는 물론, 분단된 국가에 희망이 없다. 결국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고, 굴절된 역사를 잃어버린 한국개신교의 일부 목사는 젊은 교인을 ‘영적’이름으로 성폭행하고, 담임목사직을 되물림 하고,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유용하고, 교단의 재정에 손해를 끼치고, 서양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

그것은 분명 범죄행위이다. 이 같은 목회자들의 범죄 행위는 130년의 개신교 역사 속에 나타난 민족의식과 어머니들의 기도를 전혀 자각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130년 역사 속에서 과거 범죄에 대한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3.1만세운동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민족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3.1만세운동은 이 땅의 어머니와 농업농민, 학생, 거리를 방황하던 유랑민이 벌인 민족운동이며, 독립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한국교회가 33인중 16인의 기독교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과대 포장해 매년 3.1절에 기념행사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가 청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3.1일 만세운동 96주년, 선교 130년을 맞아 한국개신교가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일각에서는 일본 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한 한국개신교가 3.1만세운동과 무슨 연관이 있으며,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온 한국개신교가 평화통일과 관련해서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반통일적이며,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이권을 챙기는 인사들이 있다는데 곱지 않은 시선이다.

민족의 역사 속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아리랑고개를 넘은 어머니들의 가치를 재평가지 않는 한, 무명옷고름 입에 물고, 검은 치마 휘날리며, 독립운동의 원동이었던 고난의 십자가를 진 어머니들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정신대로 끌려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여성들의 한을 풀어주지 않는 한, 나라와 민족에게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이 자각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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