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먼저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이 국란을 당할 때와 안보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내 피를 흘려 도와 준 혈맹국인 미국 대사의 테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림과 동시 대사의 쾌유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지금 이 사회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 못하는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는 무리들이 판을 쳐도 사회는 그들에게 잘못한 행동에 대해 꾸짖는 어른들의 준엄한 목소리가 빈약하다. 일제 식민시대와 육이오를 겪은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파괴하는 사상과 이념으로 무장한 테러집단이 기생하고 있음이 천인공노할 일이다. 테러를 자행한 범인과 이러한 기막힌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자생케 한 정치사상 및 이념집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분에 넘치는 혜택을 받았음에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 테러를 방치한 일은 어떤 이유로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은밀하게 테러를 자행한 범인을 두호한 정치 집단은 약삭빠르게 자신들과 상관없음을 선을 긋는 철면피 같은 잔꾀보다 선량한 국민 앞에 석고 대죄함이 당연하다.

특정한 나라의 국가원수를 대리한 공적인물에 대해 테러를 자행한 자는 살고 있는 국가를 부정한 국민이기를 포기한 자이며, 오직 자신 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이념 속에 갇혀 선한 이웃에게 테러를 자행하면서도 양심이 화인 맞아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돌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한 미치광이의 행동을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용납하는 정치 풍토가 사라져야 한다.

특정인물에 대한 범죄를 한 사람의 병적행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미흡하다. 그동안 테러를 감행한 범인을 두호한 정치 집단이 있었기에 테러가 가능했고, 지금까지 그가 자라도록 협력한 정치세력은 우리와는 상관없음을 발뺌만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국민들 앞에 그러한 인물이 자생할 수 있는 분위기와 토양을 만든 책임을 속죄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광우병 문제로 촛불시위를 하던 수많은 시민단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고, 왜 입을 다물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사회는 육이오 전쟁이후 70여년가까이 분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쟁준비로 인해 세계에서 국민을 가장 빈곤하게 만든 북한 공산독재 세력들과 대치중이다. 핵으로 세계를 협박하는 집단이 군사분계선 이북에 도사리고 있어 대한민국의 앞날을 전쟁의 회오리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안보상황으로 인해 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 한국교회는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미국 대사의 테러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과연 한국교회는 미국대사의 테러에 대해 진정한 속죄의 마음을 가졌는가? 나라가 건국할 때에 미국은 대한민국의 우방국으로 피를 나눈 혈맹의 나라다. 육이오로 인해 전국이 초토화되어 최빈국이 된 나라에 미국을 비롯해 우방의 인도주의가 없었더라면 이 나라는 기사회생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춥고 배고플 때 영양실조로 어려움을 겪은 육 칠 십대 국민들 가운데 구제품과 우유급식의 혜택을 받아 보지 않은 자 거의 없을 정도로 이 나라는 미국과 우방국들에게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끔찍한 테러가 맹방의 수도 한 복판에서 일어 날 수 있는가? 지금도 미국의 아들 딸 수 만 명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이역만리에서 고생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인식해야 한다. 이는 사상을 떠나 인도주의적으로 생각할 때에 자유민주주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없는 무례한 행동이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 언제부터 정치와 사상과 이념이 사람을 압도해 도덕과 윤리와 예의범절을 땅에 떨어지게 하였는가? 정치 사상가들은 국민 앞에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입에는 항상 국민을 앞세워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또는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테러가 발생하자 테러한 인물을 그동안 옹호했던 정치세력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과 무관함을 졸렬하게 표방하며 꼬리를 감췄다. 정치인의 입에서 한 말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속설이 있지만,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사상 집단은 나라가 곤경에 처해도 나만 홀로 살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로 비친다.

한국교회여 국민의 사분지일이 기독교도들인데 사회에 요인 테러가 백주에 일어나는 사회적 원인 뒤에는 기독인들의 사회 계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책해야 한다. 또한 이를 계기로 혹 교회 속에 침투한 사상 이념이 더 이상 성도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진리에 바로 서도록 하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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