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그리스도인들이 심한 박해를 당하던 순교시대에, 교회에 들어온 좋지 못한 경향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흘러서 순교당하기를 원하고, 때로는 자진하여 순교 당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에 대하여 좋은 영향도 있지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순교에 대한 강박관념(强迫觀念)이 광범위하게 또는 오래 동안에 걸쳐서 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중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택하는 도리 밖에 없을 경우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러나 할 수 만 있으면 숨는 다든지 피난하여 죽임 당함을 면하기도 하였다.

발레리안(Valerian)황제 시대에 일어났던 박해 중에 순교당한 씨프리안(Cyprian)의 경우가 그 한 예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순교당하기 약10년 전에 일어났던 데시안(Decian)의 박해 기간 중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피하는 것이 득책이며 지혜로운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변명하기를 “우리 주님께서는 핍박을 당할 때는 굴복하고 피난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친히 이를 가르치시고 또한 실천 하셨다. 순교자의 관은 하나님의 은사로 받는 것이므로 얼마동안 순교를 당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분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10년 동안 씨프리안(Cyprian)은 헌신적으로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함으로써 그의 판단과 행동이 현명하였음을 보여 주었다.

이 씨프리안(Cyprian)이나 그 밖의 여러 그리스도인 중에도 박해 시대에 일시적으로 숨는 다든지 피난하여 죽임 당함을 면하는 등은 오직 그리스도께 향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삶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부인 한다거나 배반하거나, 우상숭배에 동조하는 등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 지혜요 당당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한 숨음과 피신인 것이었다. 씨프리안(Cyprian) 등이 지혜로 생각했던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이었지 생명을 구걸하거나, 탐심을 위한 유착을 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작금에 우리 주변에서는 어떤 공로 만 있으면 그 어떠한 잘못도, 심지어는 복음의 변질 까지도 희석시켜버리고, 큰 업적 등만을 내세우는 죄를 서슴없이 범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론 교회성장을 위해서다. 그러나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숭배,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행하거나 하는 등으로 교회에 작은 화살이라도 날아오게 한 것은 제아무리 공이 크다 하여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지극히 큰 범죄인 것임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는 씨프리안(Cyprian)의 판단과 행동이 현명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작금에 사이비, 이단 등의 문제로 한국교회가 참으로 어수선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이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고 무엇이 사탄의 미혹에 이끌림 받는 것인가? 참으로 현명한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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